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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029
한자 盧叔仝
영어음역 No Sukdong
이칭/별칭 화중(和中),송재(松齋)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덕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민긍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덕천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403년연표보기
몰년 1463년연표보기
본관 풍천
대표관직 중추원동지사

[정의]

조선 전기 창원 출신의 문신.

[가계]

노숙동(盧叔仝)[1403~1463]의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화중(和中), 호는 송재(松齋). 아버지는 노언(盧焉)이다. 어머니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군기시소윤을 지낸 김양귀(金良貴)의 딸이다.

[활동사항]

노숙동은 1427년(세종 9) 문과에 급제하여 1435년(세종 17) 감찰을 지냈다. 1443년(세종 25) 응교를 역임하고, 1446년(세종 28) 사인에 이어 1448년(세종 30) 사간원 지사가 되었다. 1450년(세종 32)에 집현전 직제학으로 있으면서 우보덕(右輔德)으로 있었고, 1451년(문종 1)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1452년(문종 2)에 좌부승지로 있다가 단종이 즉위하면서 좌승지가 된 데 이어 우승지가 되었다.

1453년(단종 1)에 다시 좌승지가 된 데 이어 호조참판이 되었고, 1454년(단종 2)에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1455년(세조 1)에 예문관 제학이 된 데 이어 경연동지사가 되었다. 1456년(세조 2) 형조참판이 된 데 이어 도진무(都鎭撫)가 되었고, 1457년(세조 3)에 덕녕부윤(德寧府尹)이 된 데 이어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다시 예문관 제학 겸 강원도관찰사가 되었다가 곧 충청도관찰사가 되었다.

1458년(세조 4) 호조참판이 된 데 이어 형조참판이 되었고, 1459년(세조 5)에 노모를 봉양하기 위해 형조참판을 사직하고 판진주목사가 되었다. 1461년(세조 7)에 중추원 행첨지사가 된 데 이어 중추원 부사 겸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1463년(세조 9)에 한성부윤이 된 데 이어 중추원 동지사가 되었으며, 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

[묘소]

묘소는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부롱(釜隴)의 언덕에 있다.

[상훈과 추모]

1455년(세조 1)에 좌익원종2등공신에 녹훈되었다. 1701년(숙종 27)에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리에 세운 도곡서원(道谷書院)에 봉향되었다. 도곡서원은 대원군 때인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가 2001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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