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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근중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086
한자 黃謹中
영어음역 Hwang Geunjung
이칭/별칭 일지(一之),월담(月潭)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민긍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강원도 철원군
성별
생년 1560년연표보기
몰년 1633년연표보기
본관 창원
대표관직 강원감사|전라감사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황근중(黃謹中)[1560~1633]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일지(一之), 호는 월담(月潭). 창원황씨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영춘현감(永春縣監)을 지낸 황수(黃琇)[?~1617]이고,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南氏)[?~1618]로 좌랑(佐郞)을 지낸 이준(李浚)의 딸이다. 황경중(黃敬中)[1569~1630]의 형이며, 조선 현종 때 영의정을 지낸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1602~1673]의 외할아버지이다.

[활동사항]

황근중은 1589년(선조 22) 생원시에 장원을 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용만(龍灣)에 있던 행재소로 가 선조를 배알한 뒤 전함사별제가 되었으며, 그 뒤 경양도찰방을 지냈다. 1597년(선조 30) 동궁의 위솔(衛率)로 있다가 호조좌랑이 된 데 이어 호조정랑이 되었고, 1598년(선조 31) 송화현감이 되었으며, 1603년(선조 36) 형조좌랑이 되었고, 1604년(선조 37) 공조정랑이 되었다.

1606년(선조 39) 문과에 급제하는 한편 경상도도사로 있었고, 1608년(선조 41)에 예조정랑이 된 데 이어 사헌부 지평이 되어 세자시강원 겸 사서가 되었다. 1614년(광해군 6)에 강원감사로 있었고, 1615년(광해군 7)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다. 1616년(광해군 8)에 홍주목사로 있었고, 1623(인조 1) 전라감사로 있다가 뇌물로 전라감사 자리를 얻었다고 하여 파직되었다. 이러한 내용은 『창원부읍지』에 기록되어 있다. 1633년(인조 11)에 세상을 떠났고, 묘소는 강원도 철원군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16년 종2품 가선대부에 가자되었고, 1626년(인조 4) 가선대부 행용양위부호군(行龍驤衛副護軍)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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