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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장승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846
영어의미역 Story of Stone Guardian Post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화천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
주요 등장인물 부자|총각
관련지명 장승재기|시화마을|감계(내감)마을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소원을 들어주는 돌장승|장가를 들게 해 주는 돌장승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화천리에서 화천리 돌장승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1997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출간한 『경남 지방 장승·솟대신앙』과 2005년 창원시·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출간한 『문화유적분포지도』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는 장승이나 솟대와 같은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데, 유일하게 보존되어 있는 것이 바로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화천리 183번지에 있는 화천리 돌장승이다. 화천리 돌장승은 시화마을 북쪽 200m 지점에 서 있는 자연석으로 된 돌기둥이다. 현재 장승이 서 있는 이 일대를 장승재기라 부르는데 도로변 밭둑에 너비 37㎝, 폭 30㎝, 높이 122㎝인 붉은빛이 나는 정방형의 화강석으로 된 화천리 돌장승이 있다. 화천리 돌장승은 현재 윗부분이 깨져 잘린 상태로 온전했을 때는 높이가 2m를 넘었다고 한다.

화천리 돌장승이 세워진 시기를 정확하게 아는 이는 없지만 그 연대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하며, 옛날에는 밑에 편평한 돌을 받치고 그 위에 석장승을 세운 형태로 거리를 표시하는 기능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 밭 주인의 말에 의하면 몇십 년 전에 지나가던 화물차가 화천리 돌장승을 들이받아 중간 부분이 부러졌다고 한다. 부러져 나간 부분은 근처에 묻혀 있다고 하나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다.

이 일이 있은 뒤 화천리 돌장승은 도랑 주위에 방치되어 있었고, 이를 조영민이라는 사람이 10여 년 전에 다시 세웠는데, 이 후 화천리 돌장승을 세운 사람의 자식들이 모두 돈을 많이 벌어 성공하였다고 한다. 화천리 돌장승은 사람들이 장승이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특별한 모양이나 명문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때 화천리 돌장승이 주민들에게 공경의 대상으로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옛날에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화천의 이웃 마을인 감계(내감)마을에 70여 명의 머슴을 둔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권세가 있는 사람도 장승을 지날 때에는 반드시 말에서 내려 걸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이것이 마을 전체의 신앙 대상으로 여겨지진 않았고, 대신 소원을 이루기 위해 개인적으로 치성을 드리는 일이 가끔 있었다고 한다.

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댕기머리를 한 총각이 화천리 돌장승에 가서 키를 재어 보고 장승보다 키가 크면 장가를 간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이 전설에 근거하여 사람들은 화천리 돌장승에 가서 키를 재어 본다고 하며,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에게 화천리 돌장승 이야기를 하면 장가가고 싶은지 물어보곤 한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돌장승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는 ‘소원을 들어주는 돌장승’과 ‘장가를 들게 해 주는 돌장승’이다. 「돌장승 이야기」는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하나는 부자가 장승에 공경을 표했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장승에 키를 재어 장승보다 크면 장가를 간다는 이야기이다. 첫 번째의 부자 이야기는 장승을 새로 새운 조영민이라는 사람의 후손이 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와 상통한다.

댕기머리를 한 총각이 장승에 가서 키를 재어 보아서 장승보다 키가 크면 장가를 들 수 있다는 이야기는 장승과 장가의 첫 음이 모두 ‘장’으로 소리가 같기 때문에 소리[音]를 통한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장승보다 키가 크면 비로소 어린애에서 벗어나 장가갈 나이가 되었음을 비유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다. 종합하면 첫 번째 이야기나 두 번째 이야기 모두 장승이 사람을 길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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