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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다리 전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886
한자 -傳說
영어의미역 Legend of Ship Bridge
이칭/별칭 「뱃다리의 전설」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금산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김수광
관련지명 양교마을|금호지|뱃다리지도보기
모티프 유형 금호지를 끼고 집을 지은 김수광|배로 나른 음식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에서 뱃다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금동마을 주민 김정환(45)이 구연한 것을 채록하여 1982년 의창군에서 출간한 『내 고장의 전통』에 수록하였다.

[내용]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양교마을(예전의 경상남도 의창군 동면 금산리 양교마을)을 ‘뱃다리’라 부르는데, 이 말은 배다리, 즉 주교(舟橋)라는 뜻이다. 뱃다리가 변하여 볕다리, 즉 양교(陽僑)가 된 듯하나 지금도 창원 지역의 방언으로는 ‘뺏다리’로 불리고 있다.

조선 전기 이 마을에 김수광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김수광태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김불비의 아들로 일찍이 벼슬에 나가 봉상시정(奉常寺正)·경상도사·수원부사를 두루 거치고 양사헌납(兩司獻納)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김수광은 홀연히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금산리 양교마을으로 내려와 오직 금서(琴書)를 벗하며 세월을 보냈다.

이때 부근에 금호지(琴湖池)라는 못이 하나 있었는데 김수광은 금호지를 끼고 저택을 마련하여 정침(正寢)은 금호지 이편에 두고 사랑(舍廊)은 저쪽 편에 지어서 지냈다. 그리하여 사랑에 손님이 오면 종을 쳐서 신호를 보냈는데, 그때마다 음식상이 배에 실려 날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연유로 뱃다리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금호지도 없어지고 다만 뱃다리의 이름만 남아서 전해 올 뿐이다.

[모티프 분석]

「뱃다리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금호지를 끼고 집을 지은 김수광’과 ‘배로 나른 음식상’이다. 김수광이 금호지를 끼고 집을 지었는데 사랑에 손님이 오면 배로 음식상을 날랐다 하여 뱃다리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감** 뱃다리란 일종의 부교로 지금의 경기도지방의 능행길행사서 재현되고 있다. 2018.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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