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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월산 사자암의 전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1888
한자 白月山獅子岩-傳說
영어의미역 Legend of Sajaam Hermitage in Baekwolsan Mountain
이칭/별칭 「사자바위」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북면 월백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설|지명유래담
주요 등장인물 성인|황제|신하
관련지명 굴자군|구사군|백월산지도보기|굴현고개|해동국
모티프 유형 연못에 비친 산봉우리|백월산을 찾은 신하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월백리에서 백월산사자암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채록/수집상황]

『삼국유사(三國遺事)』 탑상편의 남백월 이성(二聖) 노힐부득 달달박박조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1962년 국제신보출판사에서 출간한 김종하의 『창원군지』와 1966년 창원향토사연구회에서 출간한 『창원의 숨결』, 1993년 한국문화원연합회 경상남도지회에서 출간한 『경남민속자료집』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백월산은 신라 때부터 명산으로 널리 알려진 산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에 있는 마금산온천 방향의 국도를 따라 가다 보면 완만한 능선으로 된 산들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우람한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백월산 산봉우리에 있는 커다란 바위 세 개 중 정상에 솟아 있는 하얗고 가장 큰 바위를 사자암이라고 부르는데,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있는 사자암에 얽힌 전설은 다음과 같다.

신라 때 노힐부득(努肹夫得)달달박박(怛怛朴朴)이라는 두 성인이 백월산에서 미륵불과 아미타불로 현신(現身) 성도(成道)하였다. 신라 굴자군에는 모습이 아주 괴이하면서도 오묘한 산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산 이름이 백월산이다. 백월산 두 성인이 말하기를 “백월산은 신라 구사군의 북쪽에 있는데 산봉우리들이 기이하게 빼어나고 자리 잡은 넓이가 수백 리에 뻗쳐 참으로 큰 진산이라 할 만하다.”고 하였다. 경덕왕은 두 성인을 기념하기 위해 백월산남사라는 절을 지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옛 노인들로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로, 옛날 당나라의 황제가 일찍이 궁중에 연못을 하나 팠는데 매월 보름 전에 달빛이 밝으면 그 연못 속에 사자처럼 생긴 산봉우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곤 하였다. 이러한 기이한 일이 계속되자 황제는 화공을 시켜 그 모양을 화폭에 그리게 하고 신하를 풀어 그 산을 찾게 하였다.

신하는 천하를 돌아다니며 찾아다니다가 해동의 북면 굴현고개에 이르러 더 이상 다닐 기력이 없어 휴식을 취하였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산이 화공이 그린 그림과 흡사해 신하는 단숨에 사자바위를 향해 뛰어올라가 바위 꼭대기에 신발 한 짝을 매달아 두고 당나라로 돌아갔다. 신발을 매달아 둔 것은 황제에게 산을 찾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신하가 황제에게 “그 산을 해동국에서 찾았습니다.”라고 말하자 황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신하는 자기가 신고 있던 신발 한 짝을 산봉우리 바위 위에 놓고 왔다고 말하였다. 보름이 되자 황제와 신하는 연못가에 서서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밝은 달이 떠오르자 연못 속에 바위산이 비쳤는데 바위 위에 신하가 벗어 둔 신발 한 짝도 선명하게 비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이한 광경을 본 황제는 감탄하며 “보름달과 같이 연못 속에 하얗게 비친다.” 하여 ‘백월산’이라 부르게 하고, 정상 부근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 세 개는 “사자가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사자암’이라 부르게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백월산 사자암의 전설」의 주요 모티프는 ‘연못에 비친 산봉우리’와 ‘백월산을 찾은 신하’이다. 보름달과 같이 연못 속에 하얗게 비친다 하여 백월산이라 부르게 되었고,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암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이와 같이 특정 형상이나 산의 외형적 특성 때문에 지명을 얻게 되는 것이 설화의 일반적인 구성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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