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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021
한자 姓氏
영어의미역 Family Name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태성

[정의]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서 동일한 인물을 조상으로 하여 이어져 내려오는 단일 혈족 집단.

[개설]

성씨란 일정한 인물을 시조로 하여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단일 혈연 집단을 지칭하는 것이다. 현재는 동일 성(姓)을 중심으로 구성된 집단의 출생 혈통을 나타내거나 한 혈통을 잇는 겨레붙이의 칭호이다.

후대의 성씨는 한자식 표기로서 이름 앞에 붙어 족계를 나타내는 동계 혈족 집단의 명칭을 가리키고 있으며, 이는 중국식 출자율(出自律)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엄격히 따지면 성(姓)은 혈족(血族)을 나타내며, 씨(氏)는 그 성(姓)의 계통을 표시하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성(姓)과 씨(姓)의 구분이 없어져 성씨(姓氏)가 성(姓)을 높여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성(姓)과 씨(氏)는 초기 발생 단계에서는 엄격히 구분된 개념이었다.

경상남도 창원 지역에는 창원 구씨창원 황씨, 창원 김씨 등 창원을 본관으로 하는 9개의 성씨와 외부에서 들어와 정착을 한 김씨·이씨·박씨·안씨·하씨 등 많은 성씨가 일정하게 겨레 집단을 구성하여 살고 있다.

[창원 성씨의 구성과 변천]

창원 지역의 성씨는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나오는 내용이 거의 일치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15세기에 존재한 전국의 성(姓)의 종류와 본관의 수가 기록되어 있는데, 창원 지역의 경우 창원 도호부조에 의창과 회원으로 각각 나누어 성씨가 나타난다. 의창에는 토성(土姓)으로 공(孔)·황(黃)·박(朴)·현(玄) 등이 있고, 내성(來姓)으로 김(金)·허(許)·정(鄭), 촌성(村姓)으로 정(丁)·구(仇)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회원, 즉 현 마산 지역에는 토성으로 감(甘)·유(兪)·정(鄭)이 있고, 내성(來姓)으로 김(金)·문(文)이 있으며, 촌성으로 제(諸)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의 마산인 회원 지역과 창원 지역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이주를 하면서 새로운 마을을 형성하고 집성촌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김씨 등 김해 등지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내성들 역시 회원 지역의 성씨와 비슷한 경우라고 추정된다.

한편 창원을 본관으로 하지는 않지만 창원 도처에 집성을 이루고 있는 성씨들은 대개 조선 중기에 입향 한 것으로 보인다. 그 중 대표적 성씨가 김씨이다. 김씨는 김해, 연안, 상산, 김녕 등의 본관을 가지고 의창구 동읍 등지를 중심으로 몇 마을씩 집성을 이루고 있다. 이들 집성들은 그들 문중에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한 집안에서 약 25명의 인물이 향안에 실린 경우도 있다. 안씨의 경우도 순흥을 본으로 하는데 퇴촌동을 중심으로 자손이 번성하였고, 이씨의 경우 경주와 전주, 전의 등 여러 본관이 창원의 여러 지역에서 나름대로의 집성을 이루고 있다.

박씨의 경우 밀양 박씨가 대부분으로 창원면 지역이던 사화(沙火)를 본거지로 하여 창원면 북면 무동과 내곡과 동읍, 대산면 등지에 널리 분포하는데, 주로 인당공파와 규정공파의 후손들이다. 또한 교하 노씨와 광주 노씨는 명곡과 내서의 삼계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그리고 창녕 조씨 등 고려 말 조선 초에 많은 인물을 배출한 성씨들은 대개 벼슬에 올라 도읍이 있는 경기 지방으로 옮겨 갔기 때문에 현재 창원 지역에 남아 있는 후손들은 그리 많지 않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토성 중 현재까지도 창원 지역에서 세력을 떨치고 있는 성씨는 황(黃), 구(具), 감(甘), 공(孔), 정(丁) 등이다.

한편 옛 회원 지역에서 내서는 창원의 내서에 포함되었으므로 노씨를 비롯한 집성들은 창원에서 다루었다. 그 이외에 마산합포구진동면, 진전면, 진북면, 구산면 등에도 많은 집성들이 존재한다. 이들 집성들 중에서 두드러진 성씨는 안동 권씨와 초계 변씨, 칠원 제씨 등이다. 주로 마산합포구 진전면 오서리 권용현의 후손들로 진전면 양촌 일원의 초계 변씨들이 유명하며, 특히 초계 변씨는 근세에 독립 운동가를 많이 배출하였다. 칠원 제씨는 임진왜란과 이후의 전란에 공을 세운 공신들이 많다.

웅천현인 진해 지역에는 신안 주씨가 웅천읍을 중심으로 그 위세가 높았다. 이외에도 희귀성인 어(魚)씨가 있었으나 현재는 거의 흩어지고 집성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최근에 창원시의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현재 통합 창원시가 되면서 창원의 인구는 100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원래 창원의 원주민으로서 집성촌을 이루고 있던 마을들은 농촌의 일부 마을을 제외하고는 급격하게 해체되었고 외지에서 유입된 성씨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은 집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직장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집단으로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창원의 원주민은 현재 10%정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집성을 이루는 성씨도 그에 기준하여 찾아야 할 것이며 마을 공동체의 해체가 더욱 가속화되면서 집성촌도 더 빠르게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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