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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030
한자 天主敎
영어의미역 Roman Catholicism
이칭/별칭 창원지구,마산교구,천주교회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민창홍

[정의]

경상남도 통합 창원 지역에서 전교 활동을 하는 그리스도 교파의 종교.

[개설]

현재 마산 교구가 관할하고 있는 경상남도 일원에 교인들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시기는 1827년 2월[음력] 정해년 박해가 시작된 이후로 보고 있다. 박해를 피해 달아난 피난 교우들이 한편으로 백운산, 덕유산 자락을 따라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낙동강을 따라 경상남도 전역으로 내려와 따뜻하고 일거리가 많은 남쪽 해안 지대로 모여들었다.

마산 지역에는 1870년대부터 작업이 시작된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에 의하면 지금의 마산합포구 구산면 구복리 저도에 정서방과 그의 아내와 아들이 진주와 서울에서 순교했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교우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원 지역은 로베르 신부의 「1883년 보고서」에 따르면 잉애터[지금의 창원시 북면 고암리에 위치]에 공소가 있었으며, 신자 24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다. 이곳이 창원 지역에서 처음으로 미사가 봉헌된 곳이다. 「1884년 보고서」에는 창원 곡목[지금의 창원시 동읍 화양리]에 공소가 있었으며, 신자 38명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한다.

진해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 1진의 병력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천주교 신자 고시니 유키나가[少西行長]가 웅천 남산 왜성에 머물며 일본에 밀사를 보내어 일본 예수회에서 세스뻬데스(Gregorio de Cespedes) 신부를 파견하여 왜군들과 미사를 봉헌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변천]

1. 1900~1965년

마산에 본당을 세우려 했던 사람은 진주 본당의 타케(Emile Joseph Taquet)[한국명 엄택기] 신부였다. 당시 마산은 마산포로 국제항이었다. 1899년 5월 1일 개항하면서 외국인도 거주할 수 있다는 조항 때문에 이미 일본인들이 대거 몰려와 살고 있었고 지금의 신마산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타케 신부는 진주 본당의 여러 사건으로 인하여 새롭게 본당을 이전하려 하였고 그 후보지로 마산포 범골[지금의 완월동 성지 여자고등학교]에 헛간이 붙은 다섯 칸 본채와 세 칸짜리 집 한 채를 마련하고 1900년 6월 29일 마산포 본당[현재 완월동 성당]이 설립되었다. 훗날 이곳에 마산 교구 최초의 성당 건물[현재 마산 성요셉 성당,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83호]이 세워진다. 제2대 주임으로 뭇세(Germain Mousset)[한국명 문제만] 신부가 부임하여 마산 지방에 전교하게 되자 신사조에 의한 지방 교육 사업과 민중 계몽에 필요한 교육 사업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사립 성지 학교[현재 성지 여자 중·고등학교]의 인가를 얻어 초등 교육을 실시하였다. 1930년 완월 본당에서 구 마산 성당 설립 기성회를 발족하고 1946년 구 마산 본당구를 형성하여 1951년 구 마산 본당[현재 남성동 성당]을 설립하였고, 1964년에는 월남동 본당이 신설되었다.

한편 진해 지역에서는 해방 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종 드레그 신부가 경화 공소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한국 신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후원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1946년 진해 공소는 진해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65년 경화동 본당이 분리되면서 진해 본당은 현재의 동명을 따라 중앙동 성당으로 개칭되었다.

2. 1966~현재

1) 마산 지역

1966년 2월 15일 교황 바오로 6세의 칙서에 의하여 부산 교구로부터 분리되어 경상남도의 5개 시, 13개 군을 관할하는 마산 교구를 설립하였다. 김수환[스테파노] 주교가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하여 남성동 성당을 주교좌성당으로 지정하고 사목을 시작하였다. 1966년 상남동 본당남성동 본당에서 분리되었다. 1968년 김수환 주교가 서울 대교구장으로 승품되어 떠나고 제2대 교구장으로 장병화[요셉] 주교가 부임하였다. 1971년 오스트리아 그랏즈교구와 자매결연을 맺어 신앙적 문화 교류를 하고 있다. 그랏즈 교구의 후원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1974년 가톨릭 문화원을 준공하여 교구청을 이전하였다. 마산 교구의 모태 성당인 완월동 본당성지 여자중·고등학교 교정에 있는 성당 건물을 마산 성요셉 성당[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83호]으로 남겨두고 1974년 완월동 주택가에 새 성전을 지어 이전하였다. 1970년대 초반 한일 합섬과 수출 자유 지역으로 인하여 새로운 도시 계획이 수립되면서 구마산·신마산 역이 통합되어 현재의 마산역으로 자리 잡고 있는 양덕동 지역은 점차 인구가 증가되고 있었다. 이에 양덕동 본당이 1975년 신설되었고 1976년에는 가톨릭 여성 회관이 개관되어 여성 근로자 교육의 요람으로 자리 잡았다. 양덕동 지역의 발전은 1980년대 산호동 본당, 회원동 본당, 구암동 본당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1991년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으로 석전동 호계 본당이 신설되었다. 내서 지역은 마산 시민들의 주거 지역으로 새롭게 형성되어 많은 아파트가 건립되고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이었고, 2004년 삼계 본당의 신설까지 이어졌다. 한편 진동면이 마산시에 편입되면서 1993년 진동 본당, 1998년에는 신마산 지역의 사목을 위해 월영 성당이 신마산 댓거리에 설립되었다.

2) 창원 지역

창원 공소가 교세 확장으로 공소에서 준본당을 거쳐 1971년 11월 9일 창원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북면 공소와 상남 공소가 창원 본당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창원면상남면, 그리고 웅남면이 마산시에 편입될 때 창원 본당중동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73년 정부가 중화학 공업 시책의 일환으로 창원 공단 조성을 마산시에 의뢰하였으며, 그 결과 1980년 4월 1일 계획된 공단 도시인 창원시가 탄생하였다. 중동 본당은 창원시에 위치한 본당이 되었다. 교구는 1977년 7월 5일 상남 공소를 당시 동명에 따라 용지동 본당으로 승격하여 성당 부지를 새로 매입하고 성전을 건립하였다. 1981년 1월 26일 용지동 본당에서 반송 본당양곡 본당을 분가, 신설하였다. 이 후 용지동 본당은 익명의 교우가 기증한 현재의 터로 성당을 이전하면서 가음동 본당으로 개칭되었다. 1989년 6월 24일 사파동 본당이 신설되고 1991년 교구 설정 25주년 기념으로 명서동 본당이 신설되었다. 1998년 1월 20일 준본당을 거쳐 1999년 1월 18일 승격된 창원시 동읍 용잠리의 용잠 본당, 2000년 대방동 본당이 신설되었다. 사파동 본당은 2005년 1월 15일 이후 하나의 사파 공동 성당을 중심으로 신월동 본당과 창원 상남 본당과 토월 본당으로 나누어지면서 한 지붕 네 가족이라는 특이한 형태로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공동 사목이 실시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신설된 본당으로 2007년 1월 2일 팔룡동 본당이 중동 본당명서동 본당에서 분가하여 설립되었다.

3) 진해 지역

진해 지역은 기존의 중앙동 성당경화동 성당이 있다. 여좌동의 신자들은 기존의 성당이 멀고 진해시 행정동 중에 인구가 가장 많다는 이유로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제기하여 1979년 여좌동 본당이 신설되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진해시의 도시 발전 계획에 따라 덕산동, 이동, 풍호동 지역으로 시청 이전 계획이 구체화 되고, 도심이 협소하여 이 지역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증가되었다. 이 지역에 1992년 8월 19일자로 경화동 본당에서 분리하여 덕산동 본당이 신설되었다. 그리고 진해와 부산을 잇는 산업 도로가 개통되고 신항이 위치하면서 진해시는 점차로 부산 가까운 지역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최근 용원 지역에 용원 본당을 신설하였다.

[현황]

천주교 마산 교구는 사목·행정의 원활하고 효율적인 관리 운영을 위하여 1997년 8월 20일자 교구 시행 공문을 통하여 교구를 4개[마산, 창원, 진주, 통영] 지구로 분할하였다. 이에 따라 통합 창원시에 위치하고 있는 성당은 마산 지구 13개 본당, 진해를 포함한 창원 지구 17개 본당이다. 통합 창원시의 천주교 교세는 2013년 현재 30개 본당과 6개 공소에 전체 신자 수는 8만 5,063명에 달하며, 43명의 신부와 66명의 수녀가 관할 지역 내에 상주하면서 사목을 하고 있다. 마산합포구 오동동에 위치한 천주교 마산 교구청은 1처, 7개 국으로 조직되어 있으며 교구장 주교 1명과 10여명의 신부가 근무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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