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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문화의 정취를 느끼다, 웅동 소사 마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2932
한자 藝術-文化-情趣-熊東少沙-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심화선

[벚꽃장에 시를 쓰는 잉어들]

소사동(所沙洞)마천동의 서쪽 ‘말내’ 건너 벌판에 사람이 살게 된 동네이다. 동네 뒤에는 높지 않은 ‘닭메’가 있고 서쪽에는 웅동 수원지가 있었다. 원래 여러 마을이 있었으나 일본 해군에서 수원지를 만들면서 주민을 모두 밀어내어 소사동웅동 1동의 가장 서쪽 동네가 되었다. 『호구 총수』에 소사리(所沙里)로 그 이름이 나온 이후 변함이 없었다. 1914년에 북쪽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죽항리를 합하여 법정동이 되고, 1983년 진해시 편입으로 소사동으로 개칭되었다.

‘아홉냇골’의 물을 웅동 수원지에 가두기 전에 이 마을 옆으로 흐르면서 사태가 자주 나서 ‘소사 마을’이라고 이름하였다고 마을 사람들은 전한다. 그러나 ‘소사리’의 ‘所’는 서쪽을 뜻하는 ‘~’의 변이 형태 ‘바’를, ‘사(沙)’는 마을을 뜻하는 ‘말’의 선행 형태 ‘~’를 풀이하기 위한 차자일 것으로 보아 ‘소(所)’의 훈인 ‘바’, ‘사(沙)’의 훈인 ‘모래’를 차자한 표기라고 민긍기 창원대 교수는 풀이한다.

진해에 일제가 해군 군항을 건설할 때 관남리(官南里), 심동리(深洞里), 용잠리(龍岑里), 평창(平倉), 멧골, 덕골, 당배기[댕배기], 더문이, 들몰[들말], 안몰[안말] 마을 사람들을 밀어내고 둑을 쌓아 ‘아홉 냇골·분산골·달팔 개울’ 등에서 흐르는 물을 모아 1914년에 완공한 저수지이다. 이때 문석윤 등이 앞장서서 저수지 설치를 저지하는 투쟁을 하였으나, 일본 해군은 문석윤을 연행 구금하고 시공을 강행했다.

웅동 수원지를 만들면서 둑 아래 평지에 벚나무를 심어서 조경을 한 것이 개화기에는 장관을 이루어 유원지가 된 적이 있어서 ‘웅동 수원지 벚꽃장’이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붙여지게 되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에 벚나무를 일본 나라꽃이라고 하여 관리를 소홀히 하여 병들어 죽어버렸다. 이후 광복 30년이 지나 진해시의 관광수로 벚나무를 지정하게 되어 1981년에 임업 연구원에서 왕벚나무와 겹벚나무를 주종으로 약 1,000여 그루를 다시 심어 새로운 벚나무 전시림을 조성하였다.

50대 이상이라면 웅동 수원지 벚꽂장의 벚꽃놀이를 기억할 텐데 벚꽃장은 당시 학생들의 봄소풍 장소였고, 어머니들은 회치라고 하여 꽃놀이 장소로 음식을 만들어 장구 장단에 노래 부르며, 막걸리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일과 식구들에게서 해방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기업체의 야유회 장소로도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군사 지역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지만 그 경계에 주민들은 논농사·밭농사를 짓고 있다. 언젠가 큰비가 내려 저수지 물이 넘쳤을 때 개울을 따라 흘러 내려온 잉어들이 많아 동네 주민들이 양동이를 들고 나가 잉어를 잡아 몸보신했다는 어른들의 얘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다. 계곡의 물이 맑아 1급수 물에만 산다는 다슬기를 잡는 광경을 수시로 볼 수 있다.

소사 마을김달진 시인, 신상철 수필가, 김형술 시인, 이혜화 시인, 나순용 수필가, 정의화 국회 의원, 문석윤, 독립운동가 이동개의 고향이기도 하다. 수려한 산세와 아홉내의 맑고 정갈한 물과 기운 덕분인지 많은 문인 및 인물들이 배출되기도 하였다.

[바람이 오면, 월하의 숨결이 열무 꽃밭 위 나비처럼]

1995년 4월, 시인의 고향 진해에서는 월하 김달진 선생의 진해 중학교 시절 제자였던 경남 대학교 신상철 교수를 중심으로 하여 지역 문인들이 고향을 노래한 아래 시를 시비로 세워 기렸다.

가끔 바람이 오면

뒤우란 열무우 꽃밭 위에는

나비들이 꽃잎처럼 날리고 있었다.

가난한 가족들은

베적삼에 땀을 씻으며

보리밥에 쑥갓쌈을 싸고 있었다.

떨어지는 훼나무꽃 향기에 취해,

늙은 암소는

긴 날을 졸리고 졸리고 있었다.

매미 소리 드물어가고

잠자리 등에 석양이 타면

우리들은 종이등을 손질하고 있었다.

어둔 지붕 위에

하얀 박꽃이

별빛 아래 떠오르면,

모깃불 연기 이는 돌담을 돌아

아낙네들은

앞개울로 앞개울로 몰려가고 있었다.

먼 고향 사람 사람 얼굴들이여

내 고향은 남방 천리,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생각이여.

[김달진, 「열무우꽃」]

김달진 문학제는 1996년부터 열리고 있다. 시 사랑 문화인 협의회 경남 지회를 주축으로 지역 문화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김달진 문학 제전 위원회’를 결성한 성과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선생의 고향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서 지역 주민들이 함께하는 문학제가 개최되어 지역 문화 예술의 위상을 알린다. 김달진 문학관은 2013년 10월 26일[토] 제18회 김달진 문학제를 개최하였다.

김달진 생가는 2004년 9월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48번지에 면적 1,564㎡ 초가[억새] 6동을 복원하고, 김달진 문학관은 2005년 11월 창원시 진해구 소사동 43번지에 면적 393,39㎡ 2동으로 개관했다. 생가는 안채·고방·작은집·고방·아래채·외양간으로, 김달진 문학관은 본동과 관리동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상 1층에는 전시실·행정실이 있고 지하 1층에는 관장실, 학예연구사실, 특별 전시실, 세미나실이 있다. 다른 1개동인 관리동은 화장실·관리실이 있다.

전시실에는 김달진 시인의 자필 원고, 도서, 사진 자료, 유물과 유품 그리고 문학제 행사 내용 및 문학상 수상자의 사진, 서예가들이 기증해 주신 김달진의 시·서예가 전시되어 있다.

김달진 문학제는 1996년부터 시작하여 2013년 18회를 맞게 되었다. 2013년 김달진 문학제의 첫째 날은 동화 구연 대회, 심포지엄, 기념식, 시상식, 축하 공연, 기념 만찬 순으로, 둘째 날은 김달진 시인 생가와 김달진 문학관 방문, 국제 시 낭송 음악회, 수상자 시화전으로 이루어졌다. 생가 마당에서는 국내외 시인의 시 낭송과 창원KC 국제 시문학상 수상자의 문학 특강, 판소리 공연, 대금, 가야금 연주 등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풍성하며, 막걸리와 파전을 소사동 부녀 회원이 준비하며 문화 예술인들과 주민들과 함께 즐기는 축제의 장이 열렸다.

김달진 문학관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국비를 받아 꿈 다락 토요 문화 학교 차오름 프로그램 ‘찾아가는 시인, 찾아오는 독자의 만남: 시야, 놀자!’ -상상·창조·공감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김달진 문학관과 생가에서 이루어지는 상상의 장, 창조의 장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문학관과 생가가 들썩이고 수업을 마치면 생가 마당에서 고무줄놀이, 땅 따먹기, 얼음땡 놀이, 줄넘기, 비석 치기 같은 놀이를 즐겨한다.

공감의 장 프로그램인 학교로 찾아가 진행하는 시인과 독자의 만남은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로 김륭·정일근·최동호·신달자·이하석 시인이 학교로 직접 찾아가서 시와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작가를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시인과 독자가 만나는 소통의 장이 마련된다.

그리고 김달진 문학관 자체 사업으로는 『시애』 발간 사업, 경남 마을 백일장, 찾아가는 문학 특강 등이 있고 창원 교육 지원청과 손잡고 재능 기부도 하고 있다.

[김달진 문학관 초입 박배덕 화백의 창작세계]

“내가 조금 손해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김달진 문학관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서양화가 박배덕의 ‘갤러리 마당’을 만난다. 입구 옆 담벼락만 보아도 여기가 어딘지 궁금하다. ‘구경하세요’ 라는 친절한 팻말이 붙어 있다. 2009년 4월 1일 개관한 이곳은 갖가지 꽃과 설치 미술,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전업 작가의 화실을 마음대로 구경하는 곳은 드물 것이다. 어떤 방문객이 오더라도 대환영이다. 꼬마들이 와서 설치해둔 작품을 어지럽혀도 “괜찮다 괜찮아” 한다. “내가 조금 손해 보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라고 늘 얘기한다. 작품을 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보이는 박배덕 화가의 진면목은 그의 말 한마디에서도 느낄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제1전시실에 작품이 전시되어 있고 중앙 화단에는 꽃과 생활 용품으로 만든 조화 꽃이 있으며, 왼쪽으로 돌아보면 조명등들이 한 줄로 땅바닥에 꽂혀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막걸리 병이다. 우와! 여기에다 색칠을 해서 땅에 꽂아두니 멀리서 보니 정말 조명 같아 보인다. 폐물감통을 이용해 천하 대장군, 지하 여장군 장승도 환한 미소로 손님을 반긴다. 큰 물고기가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연못 등 설치 미술들이 즐비하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제2전시실이라는 앙증맞은 팻말이 달려있다. 마루에는 방문객을 맞을 슬리퍼가 준비되어 있다.

전시는 1980~2013년 현재 국내외에서 꾸준히 해왔다. 올해는 진해 군항제 기간에 진해구 웅천 흰돌뫼 공원에서 ‘박배덕 자연과의 만남전’을 열흘간 전시했다. ‘시간과 여행, 물과의 만남, 자연으로부터, 향수’ 라는 네 가지 테마로 대비 관계에서 오는 입체적 상황을 표현했다. 9월 중순경에는 창원 성산 아트홀 전시실에서 기획전이 예정되어 있다. 작품은 대부분 평면으로부터의 탈출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이나 TV에서 보는 것보다 직접 보면 더욱 놀랍다. 물감은 직접 개발한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는 곳도 다양하다. 벽·돌·기왓장·도자기·컴퓨터 모니터 등 여러 가지가 사용되었다. 물·사과·화석·자연 등 모두가 우주를 닮아있다. 화석의 의미는 어머니가 자식을 잉태해서 건강한 자식을 낳게 해달라는 염원이고, 물과 사과는 정화수를 의미하는데, 어머니가 자식들을 위해 부엌 부뚜막이나 장독대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손바닥 손금이 닳도록 빌고 빌어 바른 자식이 되도록 염원하는 토템 신앙에서 찾을 수 있다. 자연을 닮아서 편안한 그림, 그렇지만 특이하다.

[김씨 박물관과 어릴 적 추억들]

김달진 시인 생가 담을 끼고 돌면 뭔가 익숙하고 ‘촌빨’(?)이 확 풍기지만 마음이 너무나 푸근한 곳이 눈에 들어온다. 1970년대 이전의 생활 풍경들, 웅천 예술촌, 부산 라디오, 김씨 공작소, 태양 카라멜 등 특이한 풍경과 마주하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여기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영화 촬영장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다.

필자는 어릴 적 마당 넓은 집에서 살았다. 그래서 사진사의 리어카[사진 배경 그림을 실은 리어카]를 며칠 맡아주면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래서 우리 사남매는 어릴 적 사진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엄마의 월남 치마에 매달려 겨우 용돈 20원을 받아내서 구멍가게로 달려가 왕사탕[눈깔사탕]을 사서 볼이 터져라 먹었던 기억, 엄마가 두부나 콩나물 사오라는 심부름을 받고선 만화방에서 만화에 푹 빠져선 심부름을 새까맣게 잊었다가 혼나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번진다.

이곳은 2008년 4월 14일 김현철 관장이 김씨 박물관을 개관했다. 김현철이라는 이름보다는 ‘고물쟁이 김씨’라고 불리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김씨 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근대 공산품이 다모여 있는 듯하다. 박물관으로 들어서면 옛 사진기, 라디오, 우리나라 첫 냉장고, 1960~1970년대 학용품 및 가정용품, 포스터, 음반 등 생활역사를 알 수가 있다. 또 다른 창고엔 더 많은 수집품들이 있다.

김현철 관장이 1987년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일본에서 군 단위의 민속관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후 일본을 몇 번 더 방문하면서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우리의 것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대구의 칠성 시장, 서울 청계천의 황학 시장, 부산 자유 시장과 망미동 등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쓰레기로 버려지는 생활 용품, 고미술품, 포스터 등 여러 가지 것들을 창고를 마련하여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아둔 고미술품, 생활 용품, 포스터 등으로 1995년부터 전시회를 열기 시작해 2000년 복지부 주관 ‘건강 2000’ 행사에 참여 후 2003년까지 전시회를 가졌다.

김현철 관장은 자신의 자화상을 겸손한 표정으로 그려준다. “어머니는 외갓집 기질이 많은 나를 ‘너는 큰자식이다’ 하면서 항상 나에게 꿈을 키워 주시고 호기심 많은 나는 어머니의 칭찬 속에서 살아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하고 싶은 일이면 꾸준하게 계획하고 실행해 나름대로 결과를 얻어왔다. 그러나 연이은 성공은 나에게 자만과 교만을 주었고 그 결과 1984년 5월에 시작한 ‘나의 제국’은 1998년 5월에 막을 내렸다. 5년간 긴 방황을 마치고 2003년 내 외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나는 가족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그의 곁을 떠나게 되었고, 그는 김씨 박물관 개관을 했다. 김현철 관장의 보물 제1호는 근대 공산품 1호 한사슴표 성냥 광고라고 하며 이것은 TV 모 프로그램에서 성냥의 역사에서 한 번 다루어진 내용이다. 한사슴표 성냥은 1897년 우리나라 고흥사 제품으로 1899년 『제국 신문』에 광고가 실렸다. 광고 내용을 살펴보면 재미가 있다.

〈한사슴표 성냥 고백〉

이 한사슴표 성냥 국산품이요 다른 성냥보다 불이 잘나고 또 장마 등이라도 불이 잘나오니 귀공들은 아무 의심마시고 팔아 주시오

이번 처음 귀국에 나왔고 이제부터 사 주시고 조선 팔도에 다른 성냥 많으나 이 한사슴표 성냥만 받아주시옵소서

2013년 4월엔 제2박물관[스토리텔링 박물관-소사 주막]을 개관했지만 운영 인력 문제로 주말에만 개관한다. 더 많은 자료가 전시되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지금 김현철 관장은 부경 사료 연구소 전문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한국 근대의 재발견 프로그램을 기획·제작 중이다.

[열무꽃과 함께하는 한국 서정시의 메카]

2005년 김달진 문학관 개관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김씨 박물관, 갤러리 마당이 생겼고, 꾸준히 여러 매체에 홍보가 되다 보니 방문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주말이면 할아버지·할머니가 손자·손녀 손을 잡고 오고, 연인·친구들이 찾아오고 주중엔 어머니들의 계모임, 학생들의 현장 체험 학습, 어린이집 꼬맹이들이 선생님의 팔에 안겨 온다. 그리고 전국에서 문학 기행으로, 창원 시티 투어로 문학관을 방문하는 형태도 다양하다. 필자는 학예사로서 권위의식으로 가득 찬 문학관이 아닌 친근한 문학관을 만들고자 한다. 언제 누가 오더라도 우리 문학관이라고 불리고 싶다.

계절이 선사하는 옷을 갈아입는 생가의 모습도 또 다른 묘미이다. 봄 매화꽃을 시작으로 자두꽃, 감꽃, 마삭줄의 바람개비꽃, 열무꽃, 각종 채소들의 꽃, 비파꽃 등 한겨울에도 꽃을 볼 수가 있다. 김달진 시인이 거닐었을 마당과 올려다보며 기특하다고 어루만져 주었을 감나무 등 작고 여린 풀 한 포기도 정감이 흐른다. 마당의 텃밭에 놀러오는 작은 곤충들과 날짐승들은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며 바라보는 자의 눈과 가슴을 시원하게 만들어준다. 김달진 문학관과 생가 그리고 소사 마을을 거닐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선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