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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3293
한자 沙道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태윤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593년 12월 27일 - 사도마을에 최초로 스페인 신부 세르데페스 도착
변천 시기/일시 1789년연표보기 - 사도 마을, 웅천현 읍내현 편입
행정구역 사도 마을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지도보기
성격 마을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있는 자연마을.

[명칭 유래]

사도 마을은 모래가 많아 사도라고 한다는 민간 어원설이 있다. 그리고 과거에는 사도곡리로 불리었는데 동쪽 들이 있는 골짜기로 풀이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1789년(정조 13)의 『호구 총수』에는 사도곡리로 나오는데 남문리와 함께 웅천현 읍내면에 속해 있었다. 1899년(고종 36)의 「웅천군 지도」에서는 사도리로 표기되고 있다.

[자연 환경]

사도 마을은 동쪽으로 와성만, 서쪽은 망덕, 제덕 마을, 남쪽은 남산, 북쪽은 성내동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와성만의 가장 깊은 만에 위치하고 있는 사도 마을은 수심도 낮기 때문에 그 일대에 갯벌이 넓게 발달하였고, 염전으로도 이용되었다. 그 갯벌은 과거 남문동까지 발달하였으나 최근 해퇴 현상과 부산·진해 경제 자유 구역 개발로 인해 갯벌이 사라지고 매립되고 있다.

[현황]

사도 마을은 외국 신부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유서 깊은 곳이다. 스페인 출신 신부 세스페데스가 1593년(선조 26) 12월 27일에 사도 마을에 도착하였고, 첫 미사는 남산왜성에서 올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로 인해 사도 마을에는 세스페데스 기념 공원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부산 진해 경제 자유 구역 남문지구 개발 공사에 따른 환경 피해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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