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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3337
한자 西城洞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미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연표보기 - 경상남도 마산부 행정(幸町)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 경상남도 마산부 행정(幸町)에서 경상남도 마산부 서성동으로 개칭
변천 시기/일시 1949년 - 경상남도 마산부 서성동에서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63년 -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과 수성동을 통합하여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0년 -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에서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 서성동으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1997년 5월 12일 -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동성동·부림동 3개의 행정동을 통합하여 동서동 관할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0년 7월 1일 -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에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합포구 서성동으로 개편
성격 법정동
면적 103,479㎡
가구수 572가구
인구[남,여] 1,127명[남자 549명, 여자 578명]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하는 법정동.

[명칭 유래]

서성동의 옛 지명인 성산리는 환주산성 부근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서성리는 환주산성의 서쪽 마을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서성동 지역은 합포현에 속했으나 조선 태종창원부에 편입되었다. 1910년 창원부가 폐지되고 마산부제 실시로 마산부 외서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성호리와 성산리의 일부를 통합하여 일본식 지명인 행정(幸町)이 되었다.

광복 이후 1946년에 일제 잔재의 청산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개칭하면서 행정을 서성동으로 바꾸었다. 1949년 지방 자치제의 실시로 마산부가 마산시로 승격하면서 경상남도 마산시 서성동이 되었다.

1963년 마산시 행정 구역 조정으로 서성동수성동을 통합하여 서성동이 되었다. 1990년 합포구의 신설로 경상남도 마산시 합포구 서성동이 되었다. 1997년 5월 12일 시 조례 제263호에 따라 행정동 통합으로 동서동 관할이 되었다.

2001년 1월 합포구의 구제 폐지로 마산시 서성동이 되었다. 2010년 마산시가 창원시와 통합되면서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이 되었다. 서성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동서동의 관할 하에 있다.

[자연 환경]

서성동마산만의 해선을 따라 위치하고 있으며 매립 이전의 구 마산항 일대에 속하며 중심지인 중앙동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자산동·성호동·완월동과 인접하고 있다.

[현황]

서성동의 면적은 약 10만 3479㎡으로 2013년 4월 현재 572세대가 분포하고 있으며 인구는 남자 549명, 여자 578명으로 총 1,127명이 거주하고 있다.

서성동은 서성 광장 사거리[옛 서성 분수 로타리]를 중심으로 신마산·북마산·구마산·해안로의 네 방향으로 나뉘는 교통의 결절점으로, 상업과 유통의 중심지 기능을 하고 있다. 서성 광장 사거리의 서쪽에는 높이 14m로 1962년에 건립된 3·15 의거탑이 세워져 있고 남서쪽에는 마산 노인 종합 복지관이 입지하고 있다.

서성동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의 사찰인 법률사가 위치하고 있다. 대표적 출신 인물로는 조선 일보 마산 지국 기자로 활동하면서 마산 지역의 언론 창달에 기여한 공로로 산호 공원에 불망비가 건립되어 있는 김형윤(金亨潤)[1903~1973]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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