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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 일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4293
한자 南鮮日報
분야 문화·교육/언론·출판
유형 문헌/연속 간행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영록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발행된 일본어 신문.

[개설]

1910년 일제 강점기 당시 이미 황해도와 강원도, 충청북도를 제외한 10개도에서 1개 내지 2개의 신문이 발행되고 있었고, 규제가 완화된 1920년대 이후에는 그 수가 더 늘어났다.

일제 강점기 당시 지방 신문에 대해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방 신문의 발행이 활발했던 것은 지방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신문을 활용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다.

[창간 경위]

『남선 일보』의 전신은 『마산 신보』이다. 『마산 신보』는 1906년 마산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발간됐으나, 2년도 넘기지 못하고 경영의 어려움으로 문을 닫았다.

이후 1908년 10월 1일 『마산 신보』가 일본인에 의해 다시 창간됐지만, 이 역시 신문 보급이 거류지 안의 일본인들로 한정돼 있었으므로 오래 가지 못하고 보상금 2,000엔에 ‘경성일보’로 넘어갔다.

1911년 『마산 신보』를 인수한 ‘경성일보’는 신문의 제호를 『남선 일보』로 바꾸어서 운영을 시작하였다.

[형태]

『마산 신보』는 창간 당시 격일간 발행된 일본어 신문이었으며, 1909년부터 일간으로 발전했다. 이후 1911년 3월 제호를 『남선 일보』로 바꾸었다.

[변천과 현황]

『남선 일보』의 경영을 맡은 ‘경성일보’는 운영이 어려워지자, 1915년 일본인 오카 요이찌와 계약을 맺고 10년간 무상으로 운영권을 위임하였다. 계약 기간이 지나자 ‘경성일보’는 경일일보 영업부장을 지낸 가와다니 시즈오에게 3,000엔을 받고 신문사를 넘겼다. 가와다니 시즈오는 그 후 1928년 장군천이 있는 마산 소방서 옆에 새 사옥과 인쇄공장을 지어 이전하였다.

그러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뒤 일본의 신문사 통폐합 방침에 따라 1941년 6월 『남선 시보』와 함께 『부산 일보』에 통합되었다.

『부산 일보』는 1907년 일본인 아쿠타가와 다다시라는 개인 소유로 창단되었다가 1919년 주식회사로 바뀐 일본어 신문이다. 『부산 일보』는 1945년 해방과 더불어 폐간되었다.

해방 이후 1946년 9월 10일 창간돼 현재 부산에서 발행되고 있는 『부산 일보』와는 이름만 같을 뿐 역사는 달리한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 당시 지방 신문은 매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발행되었다. 거의 대부분이 일본인에 의해 발행되었고, 그 역할도 철저하게 일본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다만 조선인들에게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지방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지방 신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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