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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25
한자 朴葳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몰년 시기/일시 1398년연표보기 - 박위 사망
성격 무신
성별
본관 밀양
대표 관직 밀직부사(密直副使)

[정의]

고려 시대 창원 지역에서 왜구를 격파하는데 공을 세운 무신.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아들은 박기(朴耆)이다.

[활동 사항]

박위(朴葳)[?~1398]는 공민왕 대 벼슬을 시작하여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합포(合浦)를 지켰으며 대마도(對馬島)를 정벌하는데 큰 공을 세우기도 하였다. 지방으로 김해(金海)·진주(晉州)·계림(鷄林)·영흥(永興) 등이 그가 지내 온 고을이며, 왜구(倭寇)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고 승진을 거듭해 벼슬이 밀직부사(密直副使)에 이르렀다.

합포의 진수역(鎭戌役)을 여러 차례 맡았고, 우왕[1375~1388] 때 김해 부사에 올라 왜적을 격퇴하였다. 1388년(우왕 14) 요동 정벌(遼東征伐)이 단행될 때 이성계(李成桂)를 따라 위화도(威化島)에서 회군하고 최영(崔瑩)을 몰아내었다. 1389년(창왕 1) 경상도 도순문사(慶尙道都巡問使)가 되어 전함 100여 척을 이끌고 대마도(對馬島)를 쳐서 적선 300여 척을 불태우고 돌아오는 전과를 올렸다. 뒤에 판자혜부사(判慈惠府事)가 되어 이성계와 함께 창왕(昌王)을 폐하고 공양왕(恭讓王)을 추대한 공으로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가 되고 충의군(忠義君)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또한 조선 초에 참찬 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거쳐 양광도 절도사(楊廣道節度使)가 되어 왜구를 물리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1390년(공양왕 2) 김종연(金宗衍)의 옥사에 연루되어 풍주(豐州)에 유배되었다가 사면되었으며, 이흥무(李興茂)의 옥사에 연루되어 구금되기도 하였다. 또한 대간(臺諫)과 형조에서 대역죄로 논의되었으나 태조의 호의로 석방되기도 하였으며, 서북면 도순문사(西北面都巡問使)로 나갔다가 사헌부의 거듭되는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상훈과 추모]

태조 이성계를 따라 공양왕의 옹립에 참여해 지문하부사(知門下府事)로 임명되고 충의군(忠義君)으로 봉해졌으며 공신녹권(功臣錄券) 및 궁중 마구간의 말 한 필, 백금 50냥, 백견(帛絹) 다섯 단을 하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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