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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43
한자 鎭海縣
이칭/별칭 팔진(八鎭),우산(牛山),웅천(熊川)
분야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마산합포구 진동면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018년 - 진해현 진주목의 속읍이 됨
개정 시기/일시 1390년 - 진해현 지방관 감무 파견
개정 시기/일시 1570년 - 진해현 함안군과 통합
개정 시기/일시 1617년연표보기 - 독립하여 진해현으로 설치됨
개정 시기/일시 1627년 - 진해현 창원대도호부로 편입
개정 시기/일시 1629년 - 진해현 함안군으로 편입
개정 시기/일시 1639년 - 진해현 분리
개정 시기/일시 1895년 - 진해현에서 진주부 진해군으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896년 - 진주부 진해군, 경상남도 진해군이 됨
개정 시기/일시 1908년 - 경상남도 진해군, 창원군 진해면이 됨
개정 시기/일시 2010년 - 진해시와 마산시, 경상남도 창원시에 통합
관할 지역 진해현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정의]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지역에 설치된 행정 지명.

[개설]

고려 초에 오늘날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진전면·진북면 일대에 신설한 행정 구역으로 별호는 팔진(八鎭), 혹은 우산(牛山)이다. 1895년(고종 32)에 군으로 승격되고, 1908년 창원부에 통합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1018년(현종 9) 진주목에 속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 지방관인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卷)57, 지리(地理)2 진주목(晋州牧) 진해현조(鎭海縣條)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경상도(慶尙道) 진주목(晋州牧) 진해현조(鎭海縣條) 등에 관련 기록이 있다.

[내용]

오늘날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속한 진동면, 진북면, 진전면 일대의 옛 지명이자 행정 구역에 해당한다. 『고려사(高麗史)』 지리지에 따르면 1018년(현종 9)에 진해현(鎭海縣)이 진주목(晉州牧)에 속하게 되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 지방관인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고 하였다. 이를 통해 ‘진해(鎭海)’라는 이름은 고려 초에 이미 사용되었을 것으로 파악되며 지방관을 파견한 것으로 보아 진해 지역이 주읍으로 독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 實錄 地理志)』에 진해현의 사방 경계가 동쪽으로 구산(龜山)에 이르기를 13리, 서쪽으로 진주(晉州) 임내(任內)의 반성(班城)에 이르기를 13리, 남쪽으로 고성(固城)에 이르기를 11리, 북쪽으로 함안(咸安)에 이르기를 10리라 하였다.

한편, 조선 시대에 들어서 행정적으로 지방 수령인 계수관(界首官)의 변화가 잦았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이는 중앙 정부의 지방 지배 정책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겠으나 남쪽으로 해안선을 마주하고 북·서·동으로 각기 다른 주읍(主邑)과 연접해 있는 지형상의 특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변천]

진해현(鎭海縣)은 1018년(현종 9) 진주목(晉州牧)의 속읍이 되었다가 1390년(공양왕 2) 지방관 감무(監務)를 설치하게 되면서 주읍이 되었다. 조선 태종 때는 이전의 예를 따랐다고 하며, 1570년 (선조 3)에 함안군과 합쳤다가 1617년(광해군 9)에 독립하여 진해현이 설치되었다. 이후 1627년(인조 5) 창원대도호부(昌原大都護府), 1629년(인조 7) 함안군(咸安郡)으로 계수관(界首官)의 변경을 거쳐 1639년(인조 17) 진해현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1895년(고종 32) 진주부(晉州府) 진해군, 그 이듬해인 1896년에 경상남도 진해군으로, 그리고 1908년(융희 2) 창원군 진해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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