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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시기의 마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56
한자 六二五戰爭時期-馬山
이칭/별칭 한국 전쟁 시기의 마산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1일 - 6·25 전쟁 시기 김성은 부대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고사리 쪽으로 이동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6일 - 6·25 전쟁 시기 북한군 야반산 고지 점령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7일 - 6·25 전쟁 시기 김성은 부대 고지 탈환. 마산 철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9일 - 6·25 전쟁 시기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 주둔 북한군 소멸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10일 - 6·25 전쟁 시기 마산-진동 간 보급로 확보 위한 전투로 북한군 격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11일 - 6·25 전쟁 시기 서북산 능선의 북한군 총공격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8월 19일 - 6·25 전쟁 시기 북한군이 마산 점령을 위한 총공격 감행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0년 9월 14일 - 6·25 전쟁 시기 인천 상륙 작전으로 북한군의 마산 공격 좌절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52년 - 6·25 전쟁 시기 국군 군의 학교 마산으로 이전

[정의]

6·25 전쟁 시기에 병참 기지로 쓰이면서 진동 지구 전투 등이 벌어졌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지역.

[개설]

6·25 전쟁 시기에 창원시 마산회원구마산합포구 지역은 병참 수송 기지였으며, 국군 의무병과의 근원지이기도 했다. 유엔군과 한국군의 최대 병참 기지였던 마산회원구마산합포구 지역은 7월 말 경 마산만에 미군 LST정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마산항 중앙 부두에는 미군 제533부대가 주둔하면서 군용 차량을 비롯한 중장비 등의 병기가 수송되었다. 제1부두에는 미 항만 사령부가 설치되고, 월영 국민학교에는 미 항만 수송 부대인 제155부대가 주둔했다. 신마산역, 구마산역, 북마산역은 미군 철도 수송대의 수송 업무를 위해 활용되었다.

미 제25사단은 마산 중학교[지금의 마산 고등학교]와 완월 국민학교[지금의 완월 초등학교]에 본부를 설치하고 서남부 지역의 전선에 투입된 휘하 연대를 지휘했다. 마산회원구 양덕동 들판에는 부산에 본부를 둔 미 제8보급 기지창의 분창이 들어섰다. 당시 시내의 주요 건물들은 미군 작전용 혹은 육군 병원으로 사용되었다. 1950년 12월에는 수도 육군 병원이 마산으로 옮겨왔으며, 성호 국민학교[지금의 성호 초등학교]에 자리 잡았던 육군 병원은 일제 강점기 때 일본군이 주둔했던 마산합포구 월영동의 일본 육군 중포병 대대 자리로 옮겼다. 1952년에는 국군 군의 학교가 마산으로 이전했다. 또한 마산항 광장에는 파손된 전쟁 물자들이 쌓여 있었으며, 재생을 위하여 일본이나 미국으로 보내졌다.

마산합포구마산회원구 지역은 피란처이기도 했다. 1946년에 8만 명이었던 마산의 인구가 1951년에는 13만 3000명에 이르렀으며, 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에는 10만 여 명에 달했다. 피란민들은 주로 당시 러시아에게 빌려주었던 조차지였던 마산합포구 대내동 일대에 들어갔으며, 일부는 마산합포구 중앙동마산회원구 회원동 등의 판자촌에서 살았다. 그들은 배급과 군수품에 의존했으며, 군수품 하역 일을 생활 방편으로 삼기도 했다. 남자들은 주로 부두 노동이나 어시장 및 각종 공사장에서 막일을 했고, 여자들은 군복을 수선하는 등의 일로 생계를 꾸려갔다. 피란민 중에는 유명한 문화 예술인들이 포함되어 있어 지역의 문화 수준을 높이기도 했다. 연극인 김동원, 영화배우 복혜숙, 화가 박생광·강신석, 사진작가 현일영 등이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피란민들은 본래의 거주지로 돌아갔지만 북한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은 그대로 남기도 했다.

[마산 지역 전투]

6·25 전쟁 때의 마산 지역 전투는 두 가지로 나뉜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라고도 불리는 진동 지구 전투와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 전투이다.

진동 지구 전투낙동강 전선의 중요 지점으로 8월 초부터 9월까지 한 달 여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김성은 해병 부대는 8월 1일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고사리 쪽으로 병력을 이동시켰다. 마산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던 북한군을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에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북한군은 전차를 앞세우고 경상남도 고성군 회화면 배둔리를 거쳐 마산 방면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김성은 부대는 북한군을 기습 공격해 전차 2대와 각종 병기를 노획했으며, 북한군 87명을 사살하고 3명을 포로로 잡는 승전을 거두었다. 마산합포구 진전면 고사리에서의 승전은 6·25 전쟁 발발 이후 파죽지세로 진격해 온 북한군의 공격 기세를 꺾는 전투였다. 당시 미 육군 제27연대는 마산-진동 간의 국도에서 보급로 확보를 위해 연일 고전하고 있었다. 8월 6일 새벽 북한군이 1개 연대 병력을 동원하여 야반산 고지를 점령했고, 미 27연대는 반격했지만 실패했다. 이에 김성은 부대는 치열한 육박전 끝에 고지를 탈환하고 미군에게 인계한 후 8월 7일 마산으로 철수했다.

진해 해군 통제부로부터 병력을 보충 받은 김성은 부대는 제7사단 민기석 부대와 경찰 부대 등과 함께 마산-진동 간의 보급로 확보를 둘러싸고 연일 처절한 혈전을 벌이다가 8월 10일 북한군을 격퇴하고, 11일에는 서북산 능선을 따라 포진해 있던 북한군을 총공격으로 승리하여 서북산 능선을 미 제25사단에 인계했다.

미 제25사단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은 진주 지역을 점령하고 마산으로 진격한 북한군 6사단과 마산합포구 진동면 진동리와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산에 이르는 마산합포구 진북면마산회원구 진전면의 고지에서 일진일퇴의 전쟁이 전개되고 있었다. 유엔군은 8월 9일 진동리 주변의 북한군을 소멸시켰지만 8월 19일 북한군 제6사단은 마산을 점령하기 위해 진동리에서 군북에 이르는 모든 전선에서 총공격을 감행했다. 9월 14일까지 일진일퇴를 거듭하다가 유엔군의 인천 상륙 작전을 고비로 전세는 역전되었고, 북한 인민군의 마산 공격은 좌절되었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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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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