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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091
한자 -民族反共聯盟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4년 6월 15일연표보기 -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 설립
해체 시기/일시 1966년연표보기 -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 해체
최초 설립지 이승만 대통령 별장 내 정자 - 경상남도 진해시 현동 71
현 소재지 이승만 대통 령 별장 내 정자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현동 71 지도보기
성격 아시아 국가 연대 국제 기구
설립자 이승만|장개석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 지역에 있었던 아시아 국가 연대를 목적으로 한 국제기구.

[개설]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은 1954년 공산 침략의 위협을 받는 아시아 민족 상호 간의 반공 유대를 강화하여 자유 아시아의 집단 안전 보장에 공헌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기구이다. 한국, 자유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홍콩, 마카오, 류구 8개국이 참여하였다. 한국의 이승만 대통령이 연맹 결성을 제창하였으며,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중국의 장개석 총통의 외교 노력으로 결성되었다.

1966년 한국에서 열린 제12차 회의에서 세계 반공 연맹 발족을 계기로 발전적 해체를 하고, 아시아 반공 연맹은 그 산하의 한 지역 연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변천]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은 유럽의 여러 나라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결성하자, 공산당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하여 태평양 지구의 민주 국가 집단 안전 보장 체제인 태평양동맹 결성을 제창하였다. 이에 자유중국의 장개석과 필리핀의 키리노 대통령 등이 적극적으로 환영하였다. 이에 이승만 대통령은 그 해 8월 6일부터 8일까지 자유중국 장개석 총통을 진해에 위치한 대통령 별장으로 초대하여 회담을 열었다. 두 지도자는 8월 7일 2차에 걸친 회담을 통하여 이튿날 8일에는 “태평양동맹 결성을 위한 의견을 교환했다.”는 내용으로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후 한국과 자유중국은 태평양 동맹체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로 1953년 11월 27일 이승만 대통령이 장개석 총통의 초대로 자유중국을 방문했고, 두 지도자는 ‘반공 통일 전선을 결성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에 1954년 6월 15일에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을 발족하였다. 연맹에는 한국, 자유중국, 필리핀, 베트남, 태국, 홍콩, 마카오, 류구 8개국이 참여하였다.

아시아 민족 반공 연맹은 중앙 연락 사업소를 서울에 두고, 한국, 자유중국, 필리핀, 월남, 태국의 5개 국가가 이사국이 되었다. 1956년 4월에 제2차 대회가 열린 필리핀 마닐라에서 연맹 헌장을 채택하여 반공 연맹을 발전시켰다. 1962년 5월에는 제8차 임시 총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20개국의 회원국과 16개의 옵서버, 4개의 민간단체가 옵서버로 참가했다. 하지만 1966년 한국에서 열린 제12차 회의에서 세계 반공 연맹의 발족과 함께 아시아 반공 연맹은 그 산하의 한 지역 연맹으로 발족하게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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