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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14
한자 國民會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45년 9월연표보기 - 국민회 설립
개칭 시기/일시 1960년 3월 - 국민회에서 반공 청년단으로 개칭
성격 우익 단체

[정의]

1945년 9월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서 설립된 사회단체.

[변천]

1945년 8월 17일 마산 창동 공락관에서 건국 준비 위원회를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친일파 출신 인사들이 함께 결성하고 마산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마산 지역 건국 준비 위원회는 위원장은 물론 조직과 서기, 실질적인 행동대 격인 치안대장 등 핵심 요직은 모두 진보적인 사람들이 맡고 있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친일인사와 무정부주의자들은 1945년 9월 건국 준비 위원회를 탈퇴하였다. 건국 준비 위원회를 탈퇴한 이들은 한민회를 조직해 미국 군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이 한민회는 이후 국민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마산 지역의 대표적인 우익 단체가 되었다.

국민회 등 마산 지역의 우익 청년 단체는 1960년 3·15 의거가 당시 반공 청년단으로 이름을 바꾸기도 하였고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반공 연맹으로 다시 규합하였다. 이 단체는 오늘날 자유 총연맹 등과 같은 관변 단체의 모태가 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국민회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은 각종 우익 청년 단체를 만들어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국민회를 포함한 광복 청년단, 대동 청년단, 민족 청년단, 서북 청년단 등 우익 단체들은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경찰의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초법적인 공권력을 행사하면서 특무대, 경찰과 함께 민간인 학살 사건을 주도하였다. 1960년 3·15 의거 당시 반공 청년단으로 이름을 바꾼 이들은 시위대를 향해 폭력테러를 자행하면서 무자비한 진압에 나서기도 하였다. 3·15 의거 이후에는 잠시 위축된 듯했지만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 치하에서 반공 연맹으로 다시 규합하였다.

[현황]

국민회 회원으로는 손문기, 민영학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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