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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교원 노조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50
한자 馬山敎員勞組運動
이칭/별칭 적색 교원 노조 운동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2년 2월연표보기 - 마산 적색 교원회 사건 발생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3년 3월 28일연표보기 - 마산 교육 노동조합 결성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33년 10월연표보기 - 마산 적색 교원 노동조합 사건 발생
성격 1933년 2월부터 시작된 비밀 결사 단체로서의 교육 노동조합 운동
관련 인물/단체 김두영|정두명|이장호|황보현|김경출

[정의]

일제 강점기에 마산 지역 교원 단체가 민족 교육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한 교원 노조 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의 식민 통치 기본적 입장은 일선 동조론과 동조동근을 앞세운 동화주의 통치였다. 일제는 원활한 통치를 위해 일제 강점기 내내 동화주의 통치로 일관하였다. 그리고 원활한 실행을 위한 대표적 수단으로 식민 교육을 최대한 활용하였다. 민족정신과 민족 문화의 말살을 통해 조선인을 일본인화 하려는 일제의 식민지 교육은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려는 식민 지배 정책의 기본 목표에 맞춰진 것이었다.

[경과]

진주 사범학교 출신 김두영·정두명·이장호 등은 1933년 2월 비밀 결사 단체로 교육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하였다. 이들은 경남 각지 교원들의 소모임과 연락망을 통하여 교원의 조직화와 의식화에 앞장서 많은 교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김두영은 일찍이 사범학교 재학 당시부터 독서회를 조직하는 등 사회주의 사상 수용에 앞장선 인물이다. 그는 경상남도 함안의 군북 공립 보통학교 교사 재직 시 노동자의 계급의식 고취와 공산주의 사상 보급에도 노력하였다. 또한 자신과 뜻을 같이 하는 교사가 점차 늘어나자 1932년 7월부터 마산, 진영, 진주 등지에서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동지 규합에 나섰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의식화 교육의 방법과 실천 등에 대한 연구와 토의를 거듭하였다.

김두영·정두명·황보현·김경출 등은 1932년 10월 13일 마산에서 경남교육회가 개최되자 이를 기회로 참가자들과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교환하고 다음과 같은 사항을 결의하였다. “①우리들은 교육 부분의 조직체를 결성하여 실천 운동을 감행한다. ②각자의 의식 각성을 위하여 관계 서적을 구하여 돌려본다. ③총책임자를 김두영으로 하여 그 지도에 따라 활동한다. ④잠정적으로 각자의 현재 거주지를 책임 구역으로 하여 극비리에 동지를 확보한다. ⑤결성 준비 과정에서 각각 매월 1원씩 경비를 납부한다. ⑥아동의 교육은 학구적 태도를 버리고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주의의 주입에 노력한다.” 등이었다.

이들은 결의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여러 차례 회합을 가진 끝에 1933년 3월 28일 마산 앞바다 선상에서 교육 노동조합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조합의 설립 목적은 교원들의 통일적인 조직 결성을 통한 체계적인 아동 교육에 두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공산주의 사상을 전파하고자 하였다. 교육 노조의 집행부는 의장 정두명, 재정부와 조직부 김두영, 교양부 이화준, 선전부 이명상으로 구성하였다. 중앙 부서 밑에는 지역별로 부산을 동부, 진주를 서부, 함안과 군북을 중부로 나누어 연락 체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각 지방에 소모임을 두는 한편 강령도 마련하였다. 강령은 생활권 옹호, 언동 집회의 자유,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 제국주의 교육 타도, 프롤레타리아 교육 건설,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 실시, 무산 계급의 완전한 해방 등이었다.

교육 노조는 사회단체들과도 연계하여 화합을 갖고, 종래와 같은 상부 조직은 위험하므로 각자가 분담 활동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김용찬은 마산 노동 운동, 김차룡은 부산 노동 운동, 김두영은 교원 운동, 이오판은 대구 노동 운동, 연락책은 이재성 등으로 각각 분담하여 임무를 수행하기로 하였다.

적색 교원 노조 사건 이외에도 1932년 2월에 마산 산호리 야학교를 중심으로 봉암리 등지의 야학이 관련된 마산 적색 교원회 사건이 있었다. 김형윤(金炯潤)·이종태·김또문·강형재·박근조·한성주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교원회는 잡지 『소년 전기』와 프롤레타리아 동화 동요를 중심으로 무산 아동에게 의식화 교양을 실시하였다. 이외에도 1933년 10월에는 진동 공립 보통학교 외 7개 학교가 관련되었던 적색 교원 노동조합 사건 등이 있었다.

[결과]

1932년 7월 부산 제2 상업학교 내의 비밀 결사인 사회 과학 연구회가 발각된 것을 계기로 적색 교원 노조가 일제에 노출되었다. 교원 노조는 사회 과학 연구회를 비롯한 여러 독서회를 결성·지도해 왔으며, 노동자·농민들에게 ‘제사공’, ‘노동자’등의 팸플릿과 격문을 작성 배포하는 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위 사건에 연루되었던 것이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김두영·한인식 등은 합천으로 도피하였으나 끝내 일경에 체포되고 말았다. 이로써 마산·부산·김해·의령·함안·고성·사천·남해·통영·창녕 등 경남 일대에 광범한 조직망을 가지고 있던 적색 교원 노조는 관계자 중 29명이 검거되고 그 중 22명이 구속되며 와해되고 말았다.

[의의와 평가]

일제 강점기의 민족 교육 운동은 일제의 식민 교육에 맞서 우리의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고취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를 바탕으로 장차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이에 민중의 계몽과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앞장선 민족 교육은 일제 통치 전시기에 걸쳐 국내외 각지에서 다양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교원 스스로 교육 노동조합을 만든 다음 다른 사회 운동 단체와 연대하여 학생과 노동자 의식화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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