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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 노동 조합의 민족 교육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62
한자 敎員勞動組合-民族敎育運動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32년 7월 - 교원노조 비밀결사조직 모의
전개 시기/일시 1932년 10월 13일 - 교원노조 비밀결사조직 활동방향 논의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3년 3월 28일 - 교원 노동 조합 결성
종결 시기/일시 1933년 7월 - 교원 노동 조합 해체
발생|시작 장소 교원노동조합 - 마산 앞바다 선상
성격 식민지 교육환경을 개혁하려는 민족교육운동
관련 인물/단체 김두영(金斗榮)|교원노동조합|적색교원노동조합|마산적색교원회

[정의]

1930년대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지역에서 식민지 교육 환경을 개혁하려는 민족교육운동

[경과 및 결과]

함안의 군북 공립 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김두영은 식민지 통치하의 교육환경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는 당시의 교육현실에 대해 “취학아동이 취학연령 아동의 불과 2할이고, 그나마 빈곤으로 퇴학하는 아동이 속출했으며, 혹 야학같은 것을 설치하고 교육하면 당국은 특별한 이유없이 폐쇄를 명하였으며, 또한 교사는 아동의 가정사정과 환경을 깊이 연구하는 교육자적 양식도 없이 돈을 벌기 위해 형식적으로 종사하는 식민지 교육의 비참한 상태”라며 교육환경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를 실현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1932년 7월 이명상(李明祥) 등 사범학교 동기생을 중심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하려고 했다. 1932년 10월 13일 마산에서 경남교육회가 개최되는 것을 계기로 김두영을 비롯한 정두명(鄭斗明), 황보현(黃普鉉), 김경출(金庚出), 김기찬(金奇贊), 이순성(李順晟) 등 6명은 비밀리에 만나 서로의 교육경험을 이야기하고 활동방향을 논의하였다. 그들이 논의를 통해 결정한 것은 “첫째, 교육 부문에 있어서 조직체를 결성하여 실천운동을 감행한다. 둘째, 각자의 의식 각성을 위해 관계 서적을 구하여 돌려 본다. 셋째, 총책임은 김두영으로 하여 그 지도에 따라 활동한다. 넷째, 각자의 현재 거주지를 책임구역으로 하여 동지를 포섭한다. 다섯째, 결성준비 과정의 경비를 위해 매월 1원씩 납입한다. 여섯째, 아동의 교육은 학구적 태도를 버리고 비판적으로 연구하고 주의(主義)의 주입에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여러 차례의 회의를 거쳐 1933년 3월 28일 마산 앞바다 선상에서 교원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조합의 설립목적은 교원들의 통일적인 조직 결성을 통한 체계적인 아동교육에 두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공산주의사상을 전파하고자 했다. 교육노조의 집행부는 의장은 정두명, 재정부와 조직부 김두영, 교양부 이화준(李華俊), 선전부 이명상으로 구성되었다. 중앙 부서 밑에는 지역별로 부산을 동부, 진주를 서부, 함안과 군북을 중부로 나누어 연락체계를 구축했다. 또한 각 지방에 소모임을 두는 한편 강령도 마련했다. 강령은 생활권 옹호, 언동 집회의 자유,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 제국주의 교육타도, 프롤레타리아 교육 건설, 조선인 본위의 교육제 실시, 무산 계급의 완전한 해방 등이었다.

그러나 1933년 7월 부산 제2상업학교 내의 비밀결사인 사회과학연구회가 발각된 것을 계기로 교육노조가 일제에 노출되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김두영 등은 합천으로 도피했으나 체포되었다. 이에 마산과 부산 등지의 경남 일대에서 광범한 조직망을 가지고 있던 적색교원노조는 관계자 중 29명이 검거되고 그중 22명이 구속되면서 와해되고 말았다.

적색교원노조 사건 이외에도 1932년 2월에 마산 산호리 야학교를 중심으로 봉암리 등지의 야학이 관련된 마산적색교원회 사건이 있었다. 김형윤(金炯潤), 이종태, 김또문(金又文), 강형재(姜炯宰), 박근조, 한성주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교원회는 잡지 ‘소년전기(少年戰旗)’와 프롤레타리아 동화 동요를 중심으로 무산아동에게 의식화 교양을 실시하였다. 이외에도 1933년 10월에는 진동공립보통학교 외 7개 학교가 관련되었던 적색교원노동조합사건 등이 있었다.

[의의와 평가]

『동아 일보』에 의하면 “적색 교원 노조는 경상남도 내 256개 보통학교 생도 6만여 명을 상대로 학생과 일정 접촉하는 훈도의 적화, 학생의 적화, 노동자와 농민의 적화를 목적으로 결성된 단체이다. 이는 조선 사회운동사상 처음으로 보는 사건으로 훈도들이 교단에서 여러 가지 적화 공작을 한 것은 실로 그 방법이 교묘할 뿐만 아니라 치밀한 경계를 하여 동지 간에 연락을 취했다. 준비 행동의 치밀함과 지반이 공고한고 관계 훈도들이 모두 선생으로 모범될 인물이었다. 보통학교 훈도가 중심인물이 되어 사상운동에 실제로 체계 있게 다수가 참여한 것은 처음 있는 큰 사건이다.”라며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것은 교원 스스로 교육노동조합을 만든 다음 다른 사회운동단체와 연대하여 학생과 노동자의 의식화에 주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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