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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77
한자 金祚伊-金造伊-
이칭/별칭 김은곡(金隱谷)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연표보기 - 김조이 출생
출생지 김조이 출생지 - 경남 창원
활동지 김조이 활동지 - 서울
성격 사회주의 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고려 공청 회원|민전 중앙 위원

[정의]

일제 강점기와 8·15 해방 이후 창원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활동 사항]

김조이(金祚伊)[1904~?]는 조봉암(曺奉岩)의 부인으로 1922년 서울에서 여자 고학생 상조회의 조직을 시작으로 1925년부터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25년 1월 경성 여자 청년동맹 창립 대회에서 전형 위원 및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2월에는 전조선 민중 운동자 대회 준비 위원이 되었고, 4월에는 고려 공산 청년회 중앙 위원 후보로 선출되었다. 같은 달 전조선 민중 운동자 대회가 일본 경찰에 의해 무산되자 이에 항의하기 위해 일어난 시위인 적기(赤旗) 시위 사건으로 종로 경찰서에 검거되었다. 이후 조선공산당 후보 당원으로 활약하면서 전 만주를 무대로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1928년 모스크바 동방 노력자 공산 대학에 입학하였다.

1930년 ‘조선 공산당 재조직 준비 위원회 사건’으로 수배되었으나 소재 불명으로 기소 중지되었고, 1931년 코민테른 동양부의 지시로 귀국했다. 8월 태평양 노동 조합 계열의 운동가들과 연결되어 활동하던 중 함흥경찰서에 검거되어 1934년 12월 함흥 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5년 11월 전국 인민 위원회 대표자 대회에 인천 대표로 참석하였고, 1946년 2월 민주주의 민족 전선 결성대회에 부녀 총동맹 대의원으로 참석하여 중앙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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