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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180
한자 金明奎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김명규 출생
관련 사건 시기/일시 1933년 3월 - 마산 적색 문예회 사건 발생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신간회 마산 지회 간사|마산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 마산 출신의 사회운동가.

[개설]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제 강점기 마산에서 사회 운동에 적극 참여했으며, 8·15 해방 이후에는 마산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활동 사항]

김명규(金明奎)[1892~?]는 보통학교 졸업 후 보통 문관(普通文官) 시험에 합격하여 군속(軍屬)으로 재직하다가 3·1운동 직후 그만두었다. 이후 마산 구락부 부원이 되어 여자 야학회 교사로 일했다. 1923년 3월 마산 노동 동우회 결성에 참여하여 교무부 주임, 회계부 주임, 집행 위원장을 지냈다. 마산과 창원 등지의 노동 조합, 소작 조합, 청년회 결성을 지도했다. 7월 마산 무산 소년단을 조직하고 간사를 맡았다. 8월에는 사상단체 혜성사(慧星社) 결성에 참가해 집행 위원이 되었다.

1924년 3월 노동 운동자 간친회에 참가해 삼산(三山) 노동 연합회 발기회 준비위원이 되었고, 같은 달 대구에서 열린 남선 노농 동맹 창립 대회에서 중앙 상임 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다. 4월 내서면 소작 조합의 창립총회 준비 위원이 되었고, 8월에는 마산 공산당 결성에 참여했다.

1925년 2월 전조선 민중 운동자 대회 준비 위원으로 선정되었고, 그해 8월경에는 조선 공산당에 입당하여 마산 야체이카 책임자로 선정되었고, 1926년 3월에는 경남도책이 되었다. 4월에는 마산 노동회 집행 위원이 되고 5월에는 마산 노동회에서 발행한 벽신문 『첫소리』의 논설부원이 되었다. 7월경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28년 2월 경성 지방 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1929년 4월 만기 출옥하였다.

1930년 3월 신간회 마산 지회 간사, 4월 마산 자유 노동조합 서무 재정부장이 되었다. 같은 달 부산 양화 직공 동맹 파업때 파업을 지원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31년 4월 마산 자유 노조 집행 위원장, 5월 마산 노동 연맹 집행 위원이 되었다. 11월 적색 노동 조합을 조직하기 위해 어시장 일용 노동자 및 인쇄 직공을 규합했다. 1933년 3월 ‘마산 적색 문예회 사건’으로 검거되었으나 예심에서 석방되었다. 10월경 격문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1934년 9월 부산 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1936년 10월경 부산지역 비밀결사 사건에 관계한 혐의로 검거되었다.

8·15 해방 후 마산시 인민 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1945년 12월 전국 농민 조합 총연맹 결성대회에 참석하여 중앙 집행 위원으로 선임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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