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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본감 마산 분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5208
한자 釜山本監馬山分監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동 32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남재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910년 7월 1일연표보기 - 부산 본감 소속 마산 분감 설립
이전 시기/일시 1913년 2월 1일 - 부산 본감 마산 본감을 마산 오동동으로 이전
개칭 시기/일시 1923년 5월 5일 - 부산 본감 마산 분감에서 부산 형무소 마산 지소로 개칭
개칭 시기/일시 1946년 3월 28일 - 부산 형무소 마산 지소, 마산 형무소로 승격
개칭 시기/일시 1961년 - 마산 형무소에서 마산 교도소로 개칭
이전 시기/일시 1970년 - 부산 본감 마산 분감[당시 마산 교도소]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으로 옮김
개칭 시기/일시 2010년 7월 - 마산 교도소에서 창원 교도소로 개칭
최초 설립지 부산 본감 마산분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부림동 32 지도보기
주소 변경 이력 부산 본감 마산분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불종거리로 38[오동동 155-1]지도보기
현 소재지 창원 교도소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송평로 40[회성동 235-18]지도보기
성격 교도소

[정의]

1910년 경상남도 창원 마산 지역에 설립된 수감 시설.

[건립 경위]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시설을 갖춘 최초의 감옥은 1908년에 문을 연 서대문 형무소이다. 일제가 조선의 사법과 감옥에 관한 업무를 행사하게 된 것은 1907년 7월 한일 협약에 따른 것이다. 이완용과 조선 통감이 사법·감옥 사무 위탁에 관한 각서를 조인했고 이에 따라 일제는 1907년 11월 통감부 재판소를 설치하고 조선의 재판 사무를 인수하여 일본인에 대한 재판도 관장하였다.

감옥은 1907년 12월 27일 법무부령 제1호로 ‘경성 감옥서를 설치하는 건’을 반포하고 이듬해인 1908년 4월 11일 법령 제2호로 전국 8개 감옥의 명칭과 위치를 정하여 공포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국권 강탈 과정에서 군대 해산과 고종의 강제 양위 등으로 전국적으로 의병이 궐기하고 항일의 열기가 고양되면서 감옥은 부족하게 되어, 분감을 전국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마산 분감이 설치된 것은 총감부령 24호에 의한 1910년 7월 1일이었다. 10월 1일에 내려진 조선 총독부령 제11호에 의하면 본감 8개소, 분감 13개소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진다.

[변천]

마산 분감은 1910년 7월 1일 마산시 부림 시장 입구에 있었던 경무청에 설립되었다. 마산 오동동[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으로 이전한 것은 1913년이다. 당시의 마산부 사람들은 오동동의 붉은 형무소 건물을 두고 조선인 밀집 지역에 일본인들이 고의로 음산한 건물을 지은 것이라고 이전을 요구하는 부민 대회를 열기도 했다. 1923년에 부산 형무소 마산 지소로 개칭되고, 1946년에 마산 형무소로 승격되었다. 1961년에 마산 교도소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지금의 자리인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으로 옮긴 것은 1970년이다. 마산시·창원시·진해시가 2010년 7월 1일에 통합됨에 따라 창원 교도소로 개칭되었다.

[현황]

1910년 7월 1일 설치된 마산 분감마산 부림 시장 입구의 목조 기와집 상하 3동으로 되어 있었던 경무청을 감옥으로 사용한 것이다. 1913년 2월 1일 마산시 오동동[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으로 이전했다. 당시 마산 분감에 투옥되었던 이원수는 “경찰서 유치장과는 달라 철창이 넓어 방안이 밝을 뿐만 아니라 마룻바닥이 아닌 다다미[일본식 돗자리 ]를 깐 것이었고 낡은 담요 아닌 이부자리가 있으니 마치 여관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지정된 방에 들어가니 사람은 없어 독방이었다.”라고 하였다.

마산 감옥에는 일제 강점기에 민족 해방 운동에 참여했던 무수한 사람들이 투옥되었다. 투옥된 사람들은 농민, 노동자, 학생, 민족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다양한 계층과 계급이 있었다. 경상남도 지역의 3·1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마산 감옥에 투옥되었다. 이외에 마산 감옥에 투옥된 사람들과 관련된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마산에서 발생한 청산리 전투 승전보 배포 사건, 밀양 경찰서 폭탄 투하 사건, 동양 제사 주식회사 진해 공장 노동자 쟁의 사건, 반일 문학 그룹 독서회 사건, 교사들의 신사 참배 반대 사건 등이었다. 이외에도 노동·농민 운동, 조직 운동과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마산 감옥에서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투옥되었다. 보도 연맹 관련자 1,681명이 마산 형무소에 투옥되었다가 학살되었다. 4·19 혁명의 공간에서 마산 교원 노조 이봉규·황낙구, 전국 피학살자 유족 회장 노현섭이 마산 형무소에 투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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