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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22
한자 丁亥赴燕別章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641년연표보기 - 『정해부연별장첩』 제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24일 - 『정해부연별장첩』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10월 14일연표보기 - 『정해부연별장첩』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9호|제509-10호로 지정
현 소장처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성격 필사본
작가 김류 외 58인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9호(乾)|제509-10호(坤)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시첩(詩帖).

[개설]

『정해부연별장첩(丁亥赴燕別章帖)』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정해부연별장첩』도 그 중 1종으로, 2첩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9호, 제509-10호로 지정되어 있다.

민성휘(閔聖徽)[1582~1647]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고 자는 사상(士尙), 호는 용졸당(用拙堂)이다. 성격이 호방하고 담대하여 인조반정 이후에 인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다. 1628년 중국 사행 이후, 1647년[정해년]에 형조판서로 있으면서 또 다시 중국으로 사행에 나서게 된 것이다. 죽은 뒤에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숙민(肅敏)이다. 저서로는 『송경방고록(松京訪古錄)』이 있다.

[형태 및 구성]

『정해부연별장첩』은 건(乾)·곤(坤) 두 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모두 41㎝×28㎝이며 건은 54쪽, 곤은 56쪽 분량이다. 건에는 북저(北渚) 김류(金瑬)[1571~1648], 연초재(燕超齋) 윤신지(尹新之)[1582~1657] 등 30인, 곤에는 잠곡(潛谷) 김육(金堉)[1580~1658], 지애(芝厓) 민형남(閔馨男)[1564~1650] 등 31인의 송별시가 실려 있다. 따라서 「정해부연별장첩」 두 첩에는 모두 61인의 61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정해부연별장첩』은 정해년인 1647년에 민성휘가 중국에 사신으로 떠날 때, 지인들이 그를 송별하며 지은 시를 모은 시첩이다. 민성휘의 중국사행(中國使行)과 관련된 송별시첩은 2종이 전해지고 있다. 한 종은 『무진조천별장첩』[경남 대학교 박물관 소장]이 있는데 1628년[무진년]에 명의 마지막 황제인 숭정제(崇禎帝) 즉위 축하 사절단의 부사(副使)가 되어 중국으로 떠날 때 지인들이 써준 송별시를 모은 것이다. 따라서 시의 내용은 대부분 새 황제의 등극을 축하함과 동시에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이 가득 차 있었다. 한편, 북쪽 만주족으로 인해 육로로써 중국을 가지 못하고 바닷길로 가야했기에 사행 길은 훨씬 위험했다. 때문에 무사히 사행을 마치고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내용들이 다수였다.

1628년에 비해 정해년의 사행은 이미 명나라가 멸망하고 만주족(滿洲族)이 세운 청(淸)이 중원(中原)의 새로운 주인이 되고 난 후이기에 그 내용도 사뭇 다르다. 이제 길도 육로(陸路)가 다시 열려 보다 안전하게 중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 중원을 만주족이 차지하였기 때문에 무진년 사행 때 보였던 미래에 대한 낙관과 희망은 나타낼 수가 없었다. 대신 청이 들어 선 후 중원의 변화 양상과 함께 새로운 문물에 대한 기대 등을 표하고 있다.

당시 민성휘는 65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먼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았기에 지인들의 걱정은 시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지인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민성휘는 결국 사행 중 병을 얻어 청의 수도 북경(北京)에서 사망하게 된다.

『정해부연별장첩』『무진조천별장첩』과 함께 전환기 조선 사대부들의 대청 의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책의 제목은 그러한 조선 사대부들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데 ‘조천(朝天)’ 즉 ‘천자에게 인사’를 간다는 의미와 ‘부연(赴燕)’ 다시 말해 청의 수도인 ‘연경으로 간다’는 말은 조선 사대부들이 ‘명’과 ‘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두 책은 급변하던 시기에 있어 조선 사대부들의 대외 인식을 연구하는데 좋은 역사 자료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정해부연별장첩』에는 당시 조정에서 고위 관직을 맡고 있던 61인의 시가 실려 있다. 지은이가 명확하고, 또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정해부연별장첩』은 역사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다. 또한 이 책에 실린 시들의 지은이들은 당시 가장 뛰어난 인재들로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였다는 점에서 서예사적으로도 높은 가치가 지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