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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23
한자 朝鮮眞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24일 - 『조선 진필』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10월 14일연표보기 - 『조선진필』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1호로 지정
현 소장처 경남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월영동 449]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성격 필사본
작가 허목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1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서첩(書帖).

[개설]

『조선진필(朝鮮眞筆)』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대학교는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조선진필』은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허목(許穆)[1595~1682]은 남인으로 17세기 후반 2차례의 예송(禮訟)을 이끌었으며, 군주권 강화를 통한 정치·사회 개혁을 주장하였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화보(和甫)·문부(文父)이고 호는 미수(眉叟)·대령노인(臺嶺老人) 등이다. 벼슬은 이조 판서와 우의정 등을 역임하였으나, 1678년 중추부사가 되어 송시열(宋時烈)을 반박하고 영의정 허적(許積) 등의 실정을 탄핵하고 물러나와 저술에 몰두하였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특히 전서에 능하여 동양 제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형태 및 구성]

『조선진필』은 한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44㎝×28㎝이고 분량은 24쪽이다. 허목이 전서(篆書)로 쓴 유묵을 싣고 있는 서첩으로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조선진필』은 조선 중기 유학자이자 전서로서 이름을 떨친 허목의 작품을 담고 있다. 허목의 전서는 21면에 걸쳐 실려 있는데 각 면에는 2글자씩이 실려 있으며, 맨 마지막 2면에는 각각 한 글자씩만 실려 있다. 전서의 대가답게 글씨에는 힘이 넘친다. 그리고 첩의 맨 끝에는 해서로 쓴 ‘회원의 문황묘에 아뢰는 글[謁檜原文皇廟文]’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