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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37
한자 白月禪師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890년연표보기 - 『백월선사비』 제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24일 - 『백월선사비』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10월 14일연표보기 - 『백월선사비』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25호로 지정
현 소장처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지도보기
원소재지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78
출토|발견지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성격 탁본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25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탁본첩(拓本帖).

[개설]

『백월선사비(白月禪師碑)』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에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동 대학의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백월선사비』도 그 중 한 종이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25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백월선사비』은 1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35㎝×23㎝이고 전체 쪽수 56쪽이다. 한 면에는 12자(字)×8행(行)으로 총 96자가 들어가게 잘라 붙였다. 내용이 실린 면 수는 54면이며 책의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앞쪽의 표지는 목제로 이루어졌으나, 뒤쪽 표지는 없다. 마지막 일부가 떨어져 나간 불완본이다.

[특징]

『백월선사비』는 충청남도 보령시 미산면 성주리에 위치한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聖柱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를 탁본한 것으로 비석은 국보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263㎝·너비 155㎝·두께 43㎝이며 귀부(龜趺)와 이수(螭首)를 포함한 전체 높이는 4.55m에 달한다. 비에 새겨진 글자 수는 모두 5,120자의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문은 최치원(崔致遠)이 지었고 해서로 정갈하게 쓰여진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었던 최인연(崔仁渷)이 썼는데, 서체는 당시에 유행하였던 구양순체(歐陽詢體)이다.

비석의 주인인 낭혜(朗慧)[801~888]는 속성(俗姓)이 김씨이고 신라(新羅)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8세손이다. 법명(法名)은 무염(無染), 낭혜(朗慧)는 시호(諡號)이다. 낭혜는 일찍부터 불교에 뜻을 두고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浮石寺)에 있는 석징대사(釋澄大師)로부터 화엄학(華嚴學)을 배웠으며, 821년(헌덕왕 13)에 중국에 유학하여 선승(禪僧) 보철(寶徹)에게서 선법을 익혔다. 이후 30년간 당나라에서 수행하다가 845년(문성왕 7)에 귀국하여 충청남도 보령의 성주사(聖住寺)에 머물렀다. 여러 차례 왕명을 받아 궁궐에 드나들었으며, 경문왕(景文王)이 죽은 후에 성주사로 돌아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88세의 나이로 입적(入寂)하였다.

비의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낭혜화상이 입적한 2년 뒤[890년]에 부도(浮屠)를 쌓았다는 비문의 내용으로 보아 이 시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라 ‘사산비명(四山碑銘)’의 하나인 ‘성주사 낭혜화상 백월보광탑비’, 즉 『백월선사비』낭혜화상의 불교 공부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나 있어 신라 하대 불교의 학풍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백월선사비』는 국왕의 자문에 응한 낭혜화상이 유교 경전 등을 인용하고 있어 당시의 불교와 유교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도 필수적이며 아울러 비문에는 골품제와 관련된 내용들도 담고 있어 신라 골품제 연구의 핵심 사료로 주목을 받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