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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43
한자 壽北帖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24일 - 『수북첩』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10월 14일연표보기 - 『수북첩』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31호로 지정
현 소장처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성격 필사본
작가 이광사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31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서첩.

[개설]

『수북첩(壽北帖)』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수북첩』도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3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수북첩』의 크기는 19㎝×16㎝이고 분량은 34쪽이다.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1705~1777]가 행서로 쓴 작품으로 각 면마다 두 글자씩 모두 64자가 실려 있다.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수북첩』이광사의 또 다른 호인 수북(壽北)에서 그 이름을 붙인 것이다. 표지를 넘기면 아마 이 책을 만들었던 사람이 적었던 것으로 보이는 ‘李匡師字道輔號圓嶠肅英之間入仕’ 라는 글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내용에는 아래와 같은 이광사가 직접 지은 글이 실려 있다.

“山頭採新茗 臨石瀏取淸泉 溪澗邊松梧下 觀童子持竿垂細釣 烹而潄之 柳外新鶯豁喈喈耳 據窓聽之 恍如神遊閬苑 足踏五城十二樓 羲皇上人 何能堪此耶[산꼭대기에서 새 차를 따고 바위에 다다라 맑은 샘물 길어 온다. 시냇가 소나무와 오동나무 아래서 아이들이 낚싯대 들고 가는 바늘을 드리워 삶아먹고 양치질하는 것을 본다. 버드나무 밖에 새 앵무새가 시원스레 울어서 창가에 기대어 듣자니 황홀하여 마치 정신이 낭원(閬苑)에서 노닐고 발로 오성십이루(五城十二樓)를 밟는 것 같다. 복희황제(伏羲皇帝) 때의 사람이라도 어찌 이런 것을 견딜 수 있을까?]”

이광사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서 화가이다. 글씨에서는 이서(李敍)[1662~1723]와 윤순(尹淳)[1680~1741]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이광사만의 독특한의 서체인 원교체(圓喬體)를 완성하여 후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서체를 ‘동국진체(東國眞體)’라도 한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도보(道甫), 호는 원교(圓嶠) 또는 수북(壽北)이다. 정제두(鄭齊斗)로부터 양명학을 배웠으며, 영조 임금의 등극과 함께 소론이 실각하면서 관직에 나가지 못하였다. 1755년(영조 31)에는 소론 일파의 역모 사건에 연좌되어 전라남도 진도로 귀양 가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평생 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하고 야인으로 생활하면서 작품 활동에 치중하였는데,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을 비롯하여 『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의 저서와 작품들을 남겼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