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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47
한자 海東名筆-金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24일 - 『해동명필-김생』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10월 14일연표보기 - 『해동명필-김생』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37호로 지정
현 소장처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성격 탁본
작가 김생 외 2인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37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탁본첩(拓本帖).

[개설]

『해동명필-김생(海東名筆 金生)』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에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동 대학의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해동명필-김생』은 그 중 1종이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37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해동명필-김생』의 크기는 35㎝×18㎝이다. 전체 쪽수 이면(裏面)까지 합하여 모두 56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보관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첩에는 최인연(崔仁渷)[868~944]이 찬(撰)한 것을 김생(金生)[711~791]의 글자를 단목(端目)이라는 승려가 집자(集字)하여 완성한 ‘낭공대사백월서운탑비(郎空大師白月栖雲塔碑)’[39쪽]와 김헌정(金獻貞)이 찬(撰)하고 당시 김생과 상벽을 이루었다는 승(僧) 영업(靈業)이 쓴 ‘해동고신행선사지비(海東故神行先師之碑)’[11쪽], 그리고 자헌대부 이조판서(資憲大夫 吏曹判書) 홍성민(洪聖民)[1536~1593]이 글을 짓고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가 글을 쓴 ‘유명조선국중직대부행장예원사의 김공묘갈명(有名朝鮮國中直大夫行掌隸院司議 金公墓碣銘)’[6쪽] 등 3개의 탁본이 함께 실려 있다.

[의의와 평가]

‘낭공대사 백월서운탑비’는 통일 신라 시대의 효공왕(孝恭王)[987~912]과 신덕왕(神德王)[912~917] 때 국사(國師) 낭공대사(郎空大師)[832~917]의 탑비이다. 탑비는 원래 경상북도 봉화에 있던 태자사에 954년에 세워졌으나, 태자사는 조선 중기에 폐사되었다. 이후 비는 경상북도 영천(榮川)으로 옮겨졌는데, 이웃 군의 수령으로 있던 조선 시대 최고의 서화고동(書畵古董)의 감식가이자 수집가였던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1696~?]가 이를 탁본하여 세상에 돌렸다고 한다. 비의 측면과 『약천집(藥泉集)』에 의하면 1509년(중종 4) 영천 군수 이항(李沆)이 이 비를 본군(本郡) 자민루(字民樓) 아래에 옮겼고, 명종(明宗) 때에는 중국 사람이 여기 머물면서 주야로 수천 본을 탁본해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1918년 비신은 다시 서울 경복궁의 근정전에 옮겨졌으며 지금은 국립 중앙 박물관 서예실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해서체(楷書體)의 비석 글씨는 우리나라의 집자비(集字碑) 가운데서 김생 글씨를 집자하였음을 분명하게 밝힌 유일한 비이다.

‘해동고신행선사지비(海東故神行先師之碑)’는 경상남도 산청의 단속사에 있던 비석으로, 815년(흥덕왕 5)에 건립되었지만, 현재 비는 없고 비문만 탁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남 대학교 박물관 데라우치 문고에는 신행선사비의 또 다른 탁본집인 『승영업서(僧靈業書)』가 있다. 『승영업서』의 탁본 내용과 서로 비교해 보면, 『해동명필-김생』에 실린 탁본집은 불완본 인데다 글자의 행 역시 서로 맞지 않게 배열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동명필-김생』에는 신라 시대의 두 명필인 김생과 승려 영업의 글씨와 함께 조선 전기의 명필이었던 한석봉의 글씨가 실려 있다. 비록 탁본으로 전해지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명필의 글씨를 담고 있는 만큼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