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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61
한자 金齋弄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84년 12월연표보기 - 『금재농한』 제작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6년 1월 24일 - 『금재농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기증 받아 보관
문화재 지정 일시 2010년 10월 14일연표보기 - 『금재농한』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57호로 지정
현 소장처 경남 대학교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 - 山口県山口市 桜畠 3-2-1
성격 필사본
작가 강세황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57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경남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된 표암(豹庵) 강세황(姜世晃)[1713~1791]의 서첩.

[개설]

『금재농한(金齋弄翰)』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총독(總督)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유물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에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 받아 동 대학의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금재농한』은 그 중 1종이다.

[형태 및 구성]

『금재농한』은 1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목제의 표지에 ‘金齋弄翰’이라는 표제가 쓰여 져 있고 내용은 지본묵서(紙本墨書)이다. 크기는 24㎝×14㎝이고 전체 쪽수 30쪽, 책의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금재농한』은 1784년(정조 8) 강세황이 72세 때 청나라 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조선 사절단[千秋使]의 일원[副使]으로 중국에 갔을 때 쓴 글을 모은 서첩이다. 강세황의 본관은 진주, 자는 광지(光之), 호는 표암·표옹(豹翁) 등이며, 강현(姜鋧)의 3남 6녀 중 막내이다. 할아버지 강백년(姜柏年)과 아버지에 이어 71세 때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이른바 ‘삼세기영지가(三世耆英之家)’의 영예를 누렸다. 6세에 글을 짓고 8세에 시를 지었으며, 13~14세 때는 사람들이 강세황의 글씨를 얻어 병풍을 만들 정도로 재주가 남달랐다고 한다. 시·서·화 삼절(三絶)로 일컬어졌을 만큼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추어 조선 후기 ‘예원(藝苑)의 총수(總帥)’로 불릴 만큼 칭송받았다.

『금재농한』은 모두 30면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네 면에는 ‘자이열재(自怡悅齋)’라는 글씨가 한 면에 한 자씩 쓰여 있고 23~26면에는 이 글씨를 쓰게 된 내력을 알려주는 「자이열재 후지(自怡悅齋 後識)」가 실려 있다. 그와 함께 서첩에는 ‘자이열재’라는 말이 유래하게 된 중국 양나라 도원경(陶弘景)[456~536]의 시[詔問山中何所有 賦詩以答]와 송나라의 장재(張載)[1020~1077]가 쓴 「흙 침상[土牀]」, 정호(程顥)[1032~1085] 등이 지은 시를 행서(行書) 등으로 쓴 작품 8편이 실려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는 건륭 49년 가평월(嘉平月)에 청나라의 서재(西齋) 박명(博明)이 쓴 「금제농한 발문(金齋弄翰 跋文)」과 함께 ‘유서재(有西齋)’, ‘박명지장(博明之章)’, ‘서재노인(西齋老人)’ 등과 같은 여러 가지 모양의 감정인(鑑定人)이 찍혀 있다. 이를 통해 『금재농한』이 1784년 12월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 작성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있는 비교적 늦은 시기 강세황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