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87
한자 徐譚公西征錄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필사본
작가 황진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09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慶南大學校 博物館)에 소장된 시첩(詩帖).

[개설]

『서담공서정록』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 縣立 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서담공서정록』은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서담공서정록』은 한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31㎝×27㎝이며, 분량은 48쪽이다. 서담(西潭) 황진(黃璡)[1542~1606]이 지은 38편의 시가 실려 있으며, 상태는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구들이 서울을 함락하자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였는데, 황진은 당시 의주 목사의 직임을 맡고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황진은 때로는 사신으로서, 때로는 의주 지방관으로서 임진왜란과 전후(戰後)에 대명 외교(對明外交)에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하였다. 『서담공서정록』에 실린 38편의 시들은 황진이 평안도 안주(安州)와 의주(義州)의 영위사(迎慰使) 업무를 수행하며 지은 것들이다. 영위사는 사신을 맞이하며 위로하는 것인데, 황진은 1601년 11월에 안주 영위사에 차출되었고, 그 임무를 마치자마자 12월 말에 임지(任地)에서 다시 의주 영위사로 임명되었다.

『서담공서정록』에 실린 시들은 대체로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회갑을 맞이한 나이에 객지를 떠돌아 다녀야 하는 자신의 모습과 과거에 동분서주하며 고생하던 곳들을 되돌아보는 추억과 회한, 조용한 곳에서 은거하고 싶은 생각, 병든 아내와 자식 생각 등이 주된 내용들을 이루고 있어 노회한 정객의 쓸쓸함이 묻어나고 있다. 이 또한 전쟁에서 막 벗어난 조선의 사회적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할 것이다.

황진의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경미(景美), 호는 서담(西潭)이다. 우참찬(右參贊) 예조 판서(禮曹 判書)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으며, 대명 외교에 활약이 컸다. 임진왜란 때 왕이 의주에 몽진했을 때 좋은 인상을 준 덕에, 중대한 실책이 여러 번 있었음에도 관력은 비교적 평안하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