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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089
한자 石峯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월영동 449]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원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필사본
작가 한호
소유자 한마 학원
관리자 경남 대학교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11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소재 경남 대학교 박물관(慶南大學校 博物館)에 소장된 서첩.

[개설]

『석봉서(石峰書)』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 초대 통감을 지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가 재임 기간에 수집했던 자료로,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山口縣立大學] 도서관 데라우치 문고[寺內文庫]에 소장되어 있었다. 경남 대학교는 일본 야마구치 현립 대학으로부터 1996년 98종 136점의 조선 관계 자료를 기증받아 보관하고 있는데, 『석봉서』도 그 중 1종이다.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09-111호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 및 구성]

『석봉서』는 한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크기는 36㎝×24㎝이며, 분량은 42쪽이다. 주된 내용은 석봉(石峰) 한호(韓濩)[1543~1605]의 작품이지만, 간이(簡易) 최립(崔岦)[1539~1612], 석주(石洲) 권필(權韠)[1569~1612]의 글도 각각 한편씩 실려 있다.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석봉서』에는 최립권필의 작품 한 편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석봉 한호의 유묵과 시이다. 한호의 유묵 중에는 『논어(論語)』 권20의 일부를 적은 것이 있고, 「용산추조(龍山秋眺)」, 「헌선도(獻仙桃)」 등의 시가 실려 있다. 이들 시들은 대략 1581년 무렵에 쓴 것으로 추정되며, 한호의 시풍(詩風)을 살피고 그의 전기(傳記)를 구성하는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석봉서』에서 가장 특이한 것은 한호 자신이 지었다는 ‘필론(筆論)’이다. 이것은 한호가 중국과 조선의 역대 서법의 조류와 서예가를 거론하고 자신이 글씨를 쓴 이력을 적은 것이다. 그는 이 필론에서 “내가 젊어서 이런 재주를 지녔지만 다른 재예(才藝)를 익히지 않고 고금의 서법(書法)을 구하여 좌우에 펼쳐두었으나 왕희지(王羲之)와 조맹부(趙孟頫)[1254~1322]가 누가 훌륭한지 알지 못하고 조맹부의 글씨를 임서(臨書)한 것이 몇 해가 되었다. 지금 산음계첩(山陰稧帖)와 동방삭하상찬(東方朔畵像讚)을 얻어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진본(眞本)을 전수하고 벌써 늦었음을 깨달았다. 마음에 간절히 슬퍼하며 전에 익힌 것을 모두 버리고 길이 두 가지 신묘함을 대하고 오늘 한 글자를 쓰고, 내일 열 글자를 배워 달마다 연습하고 해마다 터득하니 마음이 가는 바를 깨닫지 못하였다. 손을 게을리 하지 않았더니 그 듣고 따름이 황홀할 따름이었다. 그래서 약간의 글자를 써 보았더니 그 별처럼 펼쳐진 은구(銀鉤)가 찬란하였다. 비록 왕희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또한 조맹부 보다 못하지는 않았으니 어찌 다행스럽지 않은가.”라고 하여, 한호 자신이 송설체(松雪體)[조맹부체]를 공부하다가 왕법(王法)[왕희지체]으로 복귀하게 된 계기와 그로 인해 이전의 습속을 버리고 글씨에 매진하여 조맹부에 못지않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호가 조맹부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자부할 만큼 조선 글씨의 전형을 제시한데서 우리나라 서예사에서 한호가 갖는 위치를 짐작케 해 준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