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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185
한자 三一五義擧記念塔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탑과 부도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송성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62년 9월 20일연표보기 - 3·15 의거 기념탑 건립
보수|복원 시기/일시 1999년 - 3·15 의거 기념탑 공원 조성
현 소재지 3.15 의거 기념탑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 지도보기
성격
크기(높이,너비,두께) 12m[높이]|10.8m[둘레]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에 있는 3·15 의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세운 기념탑.

[개설]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은 장기 집권을 꾀하기 위해 온갖 부정 선거 실행하였다. 이에 분개한 마산 지역 시민과 학생들이 목숨을 걸고 항거해 싸웠는데, 이를 3·15 의거라 한다. 3·15 의거 기념탑은 이를 기리고자 1962년 9월 20일에 세운 기념탑이다.

[건립 경위]

3·15 의거 기념탑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봉기한 날을 기념하며, 이 날 의거에서 희생된 젊은 학도들의 넋을 위로하고, 3·15 의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1962년 9월 20일에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반도 건축 기술 연구소 조각가 김찬식의 작품이다.

[위치]

3·15 의거 기념탑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25에 위치하고 있다. 서성동 삼거리 교차로에 있다.

[형태]

3·15 의거 기념탑의 높이는 12m, 둘레는 10.8m이며, 형태는 삼각 석탑이다. 3·15의거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을 상징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금석문]

탑의 전면 하단부에는 이광석 시인이 쓴 명문이 새겨져 있다. “저마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의 깃발을 올리던 그날 1960년 3월 15일 더러는 독재의 총알에 꽃이슬이 되고 더러는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우리들은 다하여 싸웠고 또한 싸워서 이겼다. 보라 우리 모두 손잡고 외치던 의거의 거리에 우뚝 솟은 마산의 얼을. 이 고장 3월에 빗발친 자유와 민권의 존엄이 여기 영글었노라 1962년 7월 10일 마산 3·15 의거 기념 사업 촉성회”

[현황]

3·15 의거 기념탑의 전체 부지 면적은 원래 139㎡ 정도에 불과하였다. 도심 중심가에 위치하다 보니 교통량의 증가 등으로 시민들에게 기념탑으로서의 상징성과 인식이 결여되는 등 문제가 발생함에 따라 1999년 사업비 14억 원을 들여 다시 공원으로 단장하였다. 새로 단장한 공원의 총면적은 985㎡으로 기념탑 이외에 쉼터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 자유당 독재 정권은 부정 선거를 통해 영구 집권을 꾀하였으나, 마산 지역의 시민과 학생들은 자유·민주·정의를 외치면서 죽음으로 항거하여 싸웠다. 1960년 3월 15일 1차 의거, 4월 11일 2차 의거에서 12명이 총격에 사망하고 700여 명이 체포 구금되어 많은 고문을 당하였다. 마산 시민의 희생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3·15 의거 기념탑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하고 있는 장소로서 큰 의미를 가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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