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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188
한자 舊鎭海海軍統制府病院長舍宅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32번길 22[근화동 16-1|근화동 18]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호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9월 14일연표보기 -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국가등록문화재 제19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국가등록문화재 재지정
건립 시기/일시 1938년연표보기 -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건립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8년 8월 25일 -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주택 일부를 제2종 근린 생활 시설로 용도 변경
현 소재지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32번길 22[근화동 16-1|근화동 18]지도보기
성격 주거 시설
양식 일식 주택
소유자 이정석
문화재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정의]

일제 강점기에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근화동진해 해군 통제부 병원장의 관사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단층 일본식 주택.

[개설]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은 일제 강점기 후반인 1938년에 진해 해군 통제부 소속 병원장의 관사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단층 일식 가옥이다. 1910년 대한제국의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고자 이듬해인 1911년 진해에 군항을 설치하였다. 이로 인해 진해에는 장교와 군무원들을 위한 많은 일식 주택들이 건축되었다.

[위치]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중원로32번길 22[근화동 16-1근화동 18]에 있다. 중원 로터리에서 진해 우체국 방향인 백구로를 따라 약 200m 떨어진 지점에 있다.

[변천]

진해 해군 통제부에 근무했던 병원장의 관사로 지어 오랫동안 사용하다가 지금은 일반인이 매입하여 1998년 8월 25일에 주택 일부를 제2종 근린 생활 시설[음식점]로 용도 변경하여 식당으로 쓰고 있다. 본채 외에 정원에 두 채의 건물이 더 있는데 모두 후대에 증축된 것으로 보인다. 주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간은 좁아서 주방의 앞과 측면의 처마 밑까지 벽을 내쌓아 공간을 확장했다. 남쪽에 면한 실(室)도 처마 밑까지 공간을 확장하고 거기에 미서 유리창을 시설해 놓았다. 전반적으로 구조재는 당초의 부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내외의 창호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건축 당시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실내 화장실과 세면소의 구조와 형식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다만 속복도에 면한 각 실의 출입문은 목재 유리문으로 교체되어 있다. 2005년 9월 14일 국가등록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등록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대지의 북측에 개설되어 있는 폭 8m의 동서 도로가 주도로이며, 이 도로에 면한 북측 담의 중앙부에 작은 문을 만들어 주택으로 출입하고 있다. 이 문을 들어서면 뒷벽에서 돌출되어 있는 현관이 있고, 현관과 속복도 사이에는 바닥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2단의 장마루가 놓여있다.

주택의 평면은 속복도식으로 평면의 가운데 장마루를 시설한 좁은 복도를 두고 그 양측에 각 실(室)을 배치한 형태이다. 평면 형태는 크게 보면 ‘一자형’이나 자세히 보면 정면 좌측부가 돌출되어 있는 ‘T자형’이며, 내부 공간은 현관[大玄關, 오오겐깐]을 중심으로 크게 왼편이 남성의 생활 공간, 오른쪽이 여성의 생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외벽 마감 재료의 사용에도 공간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는데, 외부인을 접객하는 응접 공간의 외벽은 시멘트 모르타르 뿌리기로 마감한 반면 가족들의 생활 공간에는 목재 비늘 판벽을 사용하여 마감했다. 이는 공간의 용도와 사용자에 따라 마감 재료에 차이를 두어 공간의 성격을 구분한 특징이 있다. 즉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 공간은 양식(洋式)으로, 가족들의 생활 영역인 주거 공간은 일본식(日本式)으로 처리한 것이다.

이 가옥의 외벽에는 세장한 오르내리창과 장방형의 미서기 창이 함께 사용되었으며, 오르내리창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실내에는 도코노마[일본식 방의 윗목에 바닥을 한층 높여 만든 곳]와 찌가이다나[두 장의 판자를 좌우에서 아래위로 어긋나게 댄 일본식 선반] 등의 일본식 주택 구성 요소가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 당시의 일본식 주거 문화와 주생활 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각 실의 바닥은 다다미를 들어내고 온돌방으로 개조 후 비닐 장판을 깔았다.

대지 내 앞 마당은 잔디와 동백나무 등 여러 종의 조경수로 잘 가꾸어 놓았으며, 주택과 함께 조화를 이루어 이 집의 역사성을 돋보이게 한다. 앞마당 동측에는 이 집 주인이 사용하는 작은 별채[블럭조, 청색 기와 맞배지붕]가 자리 잡고 있다.

[현황]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은 1938년경에 지은 후 수차례 증·개축했음에도 전반적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이는 수리와 부분적인 증·개축시 기본 구조와 의장적 특성을 가진 부분을 철거하지 않고 당시의 원형을 가급적 보전하는 원칙을 지키면서 고쳤기 때문이다.

[의의와 평가]

구 진해해군통제부 병원장 사택은 근대기 진해 지역의 특수한 역사적 상황을 보여주는 향토사 자료이자 일제 강점기 진해 거주 일본인들의 주거 문화와 주택 형식 및 조경을 이해할 수 있는 가옥이라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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