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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193
한자 舊馬山憲兵分遣隊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월남동3가 1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호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6년연표보기 - 구 마산 헌병 분견대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9월 14일연표보기 - 구 마산 헌병 분견대 등록 문화재 제198호 지정
현 소재지 구 마산 헌병 분견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월남동 3가 11]지도보기
성격 군용 관청 및 업무 시설
양식 양식
소유자 문화재청
관리자 문화재청
문화재 지정 번호 등록 문화재 제198호

[정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남동에 있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

[개설]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옛 일본군 헌병 분견대 건물로, 일제 강점기 중반인 1926년에 붉은 벽돌로 지었다. 일본 군대의 마산 진출은 1905년 5월 마산선(馬山線) 철도가 건설될 때 시작되었다. 1909년 12월에 대구 주둔 일본군 헌병 분견소가 신마산에 설립되었고, 3·1 운동 후인 1920년에 이르러 일제는 헌병 경찰제를 보통 경찰제로 바꾸어 경찰이 치안을 맡도록 했다.

1921년에 지금의 마산 중부 경찰서 자리에 있던 헌병 분견대 건물을 증축해 마산 경찰서로 사용하게 되면서 이 건물을 경찰에게 내어 주고 1926년에 지금 자리에 헌병 분견대 건물을 새로 지어 이전했다. 신축 시 대지가 넓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폭 축소되어 건물 주위로 한정되어 있다. 건물 인근에는 분견소장 관사(官舍)가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위치]

구 마산 헌병 분견대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3·15대로 52[월남동 3가 11]에 있다. 남해 고속 도로 서마산 나들목으로 진입하여 마산회원구를 거쳐 국립 3·15 민주 묘지 방면으로 3·15대로[국도 2호선]를 따라 내려가다 3·15 의거 탑마산합포구청을 지나 경남 대학교 방면으로 약 13㎞ 정도 이동하면 도착한다.

[변천]

구 마산 헌병 분견대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마산 지역 독립 운동가들이 잡혀와 고초를 겪었던 근대사의 질곡을 보여 주는 역사의 현장으로 일제의 탄압과 무단 통치를 상징한다. 1945년 광복 후 군 정보기관인 옛 보안 사령부[현 국군 기무 사령부]의 마산 파견대가 ‘해양 공사’라는 간판을 달고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민주화를 주장하는 인사들을 사찰했던 곳이기도 했다. 1990년에 보안 사령부가 폐지되고 군 정보 요원들이 철수하면서 건물만 남게 되었으며, 그 후 기무사 출신 퇴역 군인들의 친목 단체인 ‘충호회 경남 지부’와 보훈 자녀 단체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물 주변에는 상가가 밀집해 있고, 한 블록 뒤에는 저층 주택지가 형성되어 있다. 주택지 외곽에는 중고층 높이의 공동주택 단지가 위치하고 있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마산항 및 지금은 폐지된 된 마산항역이 자리 잡고 있다. 2005년 9월 14일 등록 문화재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구 마산 헌병 분견대는 벽돌 조적조 건물로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이고, 연 면적은 175.21㎡이다. 건물의 정면 중앙에 놓인 현관 출입 부를 중심으로 양측에 3개씩의 세로 창을 대칭으로 배치했다. 외벽에는 회흑색 벽돌을 사용하여 다섯 줄의 수평 띠를 둘렀는데, 이는 단조로운 벽면을 분할하여 수평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붉은 벽돌의 물성과 세로로 긴 창은 일제의 통치 보조 기관이었던 헌병대의 권위와 위엄을 강조하는 요소이나 벽면에 넣은 여러 줄의 수평 띠는 이를 다소 완화하는 어휘로 사용되었다. 건물 내부는 가운데 복도를 둔 중복도 형식으로 되어 있었으며, 현재의 출입부 우측편의 사무장실 끝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관 출입부와 창의 위쪽의 인방은 평아치에 가까운 약한 곡률의 아치 형태로 만들었으며, 창 하부의 흰색의 창대는 외벽 밖으로 약간 돌출되어 있다. 아치형 창 상인방의 중앙에는 사다리 모양의 흰색 석재를 끼워 넣어 창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를 주었다. 벽돌로 이루어진 외벽은 길이쌓기와 마구리쌓기를 번갈아 가며 쌓는 영식 쌓기 방식으로 시공한 것이다.

지붕은 단정한 형태의 우진각 지붕으로,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 기와를 덮었다. 정면 현관 출입 부 상부에는 본래 작은 삼각형의 박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철거되었다. 지면에서 4단의 계단을 올라온 지점에 1층 바닥이 있으며, 그 하부는 지하층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건물 우측면의 대지가 좌측보다 낮아 지하층의 우측면은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현황]

2008년에 지붕을 해체하여 수리한 후 최근 건물의 원형 복원을 위한 수리를 했다. 보수 전 건물의 창은 본래 목제 오르내리창이었으나 미서기창으로 바뀌었다. 고증과 외벽에 남아 있는 흔적을 고려할 때 건물의 우측면에는 지하층으로 통하는 복도각과 원형창이 시설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일제가 마산에 헌병을 파견하여 치안을 확보함과 동시에 독립 운동가를 탄압했던 역사적인 건물이다. 일제의 강권 무력 통치를 상징하는 건물이자 당시 외래 건축의 영향을 받아 건축된 서양식 건축이라는데 역사적·건축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