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194
한자 昌原召畓洞金鍾瑛生家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44번길 33[소답동 131-14]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이호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26년 -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이전 및 증축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9월 14일연표보기 -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등록 문화재 제200호 지정
현 소재지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44번길 33[소답동 131-14]지도보기
성격 주거 시설
소유자 김익태 외 4인
관리자 창원시
문화재 지정 번호 등록 문화재 제200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소답동에 있는 한국 근대 조각의 선구자 우성 김종영의 생가.

[개설]

한국 근대 조각가 우성(又誠) 김종영[1915~1982]의 생가로, 안채와 아래채, 대문 채 및 별채로 이루어져 있다. 수납공간과 높은 다락, 미서기 유리문과 출입구 상부의 채광을 겸한 환기창 등이 특징이다. 가곡 「고향의 봄」에서 ‘울긋불긋 꽃 대궐’이라는 노랫말은 바로 이 집을 묘사한 것이다.

[위치]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는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 44번길 33[소답동 131-14]에 있다. 창원 향교(昌原鄕校)에서 동남쪽으로 450m 지점에 위치한다. 소답 초등학교에서 북쪽으로 약 100m 정도 떨어져 있다.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보면 남해 고속도로 동마산 IC에서 창원 컨트리클럽 방면으로 3㎞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김종영의 증조부인 모연 김영규[1857~1931]가 1926년에 이전·증축한 가옥이다. 안채 어칸 종도리 받침장여 밑에 1940년인 경진년 2월 16일에 기둥을 세우고, 같은 달 30일에 상량하였다는 붓으로 쓴 글씨가 남아 있어 1940년에 고쳐지었음을 알 수 있다. 그해 4월에 아래채를 증축하고, 같은 해 8월 초에는 대문채를 새로 지었다.

1974년 이후 주위에 상가와 중고층 건물이 들어서면서 도시의 섬이 되었고, 1994년에 대지를 관통하여 도로가 나면서 여러 채의 건물이 헐렸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본채 영역과 사미루·별당이 있는 별채 영역이 분리되었다. 1995년 ‘미술의 해 조직 위원회’에서 표석을 세우고 2005년 9월 14일 문화재청에서 등록 문화재 제200호로 지정하였다.

[형태]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는 안채·아래채·대문채로 구성된 본가와 별채로 이루어져 있다. 본가는 대지의 남동 측에 치우쳐 있는 ‘ㄷ자형’ 안채의 왼편에 ‘一’자형 아래채가 안채를 향해 위치하고, 대지의 서편 토담과 나란하게 대문채가 자리 잡고 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본가와 떨어져 있는 별채에는 정자와 사미루가 ‘ㄱ’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안채는 ‘ㄷ’자형으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심 공간 좌우 앞쪽으로 익사가 돌출된 형태이다. 평면은 중앙에 대청을 두고, 앞쪽에 툇마루를 둔 형식으로, 좌우 퇴칸의 간격을 넓게 잡아 부엌과 곁방의 면적을 넓게 구성했으며. 상부 가구는 5량가이다. 구조는 익공식으로 단순한 형태의 익공으로 대량을 받고 있으며 대량 위에는 동자주를 세우고 첨차형 부재를 끼워 장식한 다음 종량을 받은 후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안채는 복도형의 툇마루를 통해 각 실로 출입하며, 이를 위해 툇마루에 출입을 위한 창호를 달아 놓았다. 특히 양 협칸의 방은 툇마루 외에도 대청과 연결되는 문을 따로 설치하고 있는 등, 안채에 설치된 창호는 수도 많지만 위치에 따라 크기와 종류가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아래채는 안채 좌측에서 남향하는 ‘一’자형의 전후퇴집으로, 규모는 전후퇴가 있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전퇴에만 툇마루를 꾸미고 나머지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하였고, 우측면과 배면에는 쪽마루를 시설해 놓았다. 안채는 각주를 주로 사용한 반면 아래채는 내부 기둥을 제외하면 모두 굵은 원주를 사용하고 있어 집의 규모나 위계에 비해 다소 과한 느낌이 든다. 아래채의 상부 가구는 익공식의 5량가 굴도리집이며, 기둥을 비롯 대량과 종량, 도리 등은 상당히 정교하게 다듬어 사용했다. 아래채의 창호는 방의 경우 정면은 두짝 세살문, 배면은 외짝 세살문을 각각 달았으며, 대청에는 정면에 네짝 미서기문, 배면에 네짝 세살문을 달았다.

대문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집으로, 평면은 가운데 두 짝 판문을 단 대문간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꾸민 형태이다. 상부 가구는 굴도리를 사용한 간단한 형식의 3량가로 대들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도록 했다.

별채의 중심 건물인 별당은 정면 14칸, 측면 1칸의 전후퇴집으로 평면은 좌측부터 방-방-마루-방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좌측방의 측면에 블록 벽과 슬레이트지붕으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세입자의 부엌·창고로 사용하고 있다. 전퇴에는 툇마루를 꾸미고, ‘아(亞)’자형 평난간을 시설했다. 후퇴를 방과 마루에 포함시켜 내부 공간을 확장했다. 배면과 우측면에는 폭이 좁은 쪽마루가 ‘ㄱ’자형으로 길게 달려 있다. 기둥은 외부에만 모두 원주를 쓰고, 온돌방 주위는 각주를 사용했다.

별당의 기단은 화강석 장대석을 쌓아 조성했으며, 전면(前面) 기단석의 표면에 문고리 모양의 쇠고리가 박혀 있으며, 연목 끝에도 문고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는 행사기 있을 때 차일(遮日)을 치기 위한 시설로 보인다. 장대석 기단 위에 놓인 초석은 화강석을 원형으로 다듬은 것이다. 별당의 구조 양식은 이익공계 5량가의 겹처마 팔작집으로, 지붕에는 한식 기와를 덮었다. 초석 위에 원주와 각주를 세워 상부가구를 지지하며, 상부가구는 툇보·대들보·종보 위에 주심도리·중도리·종도리를 놓아 결구한 형태이다. 이익공 양식의 구성은 기둥머리에 앙서형 초익공 쇠서를 끼우고 그 위에 주두를 놓아 수서형 이익공 쇠서와 도리방향의 첨차형 부재를 십자(十字)로 결구했다. 그 위에 결구된 툇보의 머리는 봉두형(鳳頭形)으로 깎았다. 주간의 창방과 처마도리 받침장여 사이에는 초각한 화반을 놓아 장식했다. 좌우 온돌방의 정면 띠살창 위에는 환기창이 시설되어 있으며, 마루 앞 주간(柱間)에는 네 짝의 넉설창이 시설되어 있는데, 이는 후설(後設)된 것으로 보인다. 정면 툇마루 밑은 근대기에 생산된 적벽돌을 사용하여 영롱쌓기를 했다.

사미루(四美樓)는 조각가 김종영의 선대(先代)가 문객(門客)들과 서화 및 풍류를 즐긴 곳이다. 별당의 대문채에 해당하는 사미루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대문으로, 어칸 상부에 공루(空樓)를 꾸민 형태이다. 솟을대문의 어칸 상부에 공루를 두는 형식은 경남 지방 서원 건축이나 재실 건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형태이다. 평면은 키 큰 판문이 달린 어칸이 대문간이고, 그 좌측에 온돌방, 우측에 장마루를 시설한 고방과 변소가 배설되어 있다. 우측 고방 한편에 공루로 오르내리기 위한 목조 계단이 있다.

정면 기단은 마당이 기단보다 높은 관계로 건물 쪽으로 내려가는 화강석 계단을 설치하여 마당과 기단의 높이를 구분했으며, 화강석 외벌대 기단을 측면 담장을 기점으로 설치하였다. 상부가구는 보와 주심도리를 결구하고 보 위에 대공을 세운 후 종도리를 올린 3량가이나, 어칸은 기둥 중심에 도리 대신 귀틀을 설치하고 귀틀 위에 기둥을 세운 중층 구조로 누다락은 사각으로 도리를 짜 맞추었다.

도리 위에는 좌우로 들보를 설치 한 후 볼트와 너트를 사용하여 도리와 보를 고정한 후 보 위에 동자주를 세우고 다시 그 위에 연목과 추녀를 놓고 들리지 않도록 들보 중앙에 연목과 추녀 끝을 볼트로 고정했다. 좌측 온돌방의 천정은 벽지를 발라 마감했으며, 우측 마루와 공루의 천정은 연등천정으로 마감했다. 사미루의 천정의 연목 짜임은 사모정 형태로 팔작지붕과는 대조를 이룬다. 공루의 앞뒤 면에는 아(亞)자형 평난간을 설치했으며, 대문간과 공루의 앞·뒤 면은 소로로 수장했다. 협칸 박공부에는 풍판을 달았으며, 어칸 지붕의 박공벽에는 수키와를 눕혀 붙여 마감했다.

[현황]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는 인근에 고층 아파트의 근린 생활 시설이 무분별하게 들어서 경관이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는 전후퇴가 발달한 평면 형식과 구조 및 각부 장식에서 근대 한옥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재목이 넉넉하고 구조 및 결구가 견실하다. 초석과 기단석 및 재목을 정치하게 치목하여 사용했다. 안채는 근대 한옥의 양식이면서, 구조가 독특하고 치목이나 결구 방식이 정교하며 공간 활용도가 매우 높고, 아래채나 별채에 비하여 근대기 상류층의 주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별당은 주두 및 익공·봉두·첨차를 사용한 5량가의 이익공식 건물로, 이 같은 사례는 민간 주택에 보기 드문 것으로 전통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장식이 적고 과장된 한옥을 추구하던 근대기 창원 지방 상류층의 건축 경향을 잘 보여 준다. 사미루의 공루는 19세기 말 이후 경남 지방 재실 건축과 서원 건축에서 적극 수용되던 권위적인 공루형 솟을 대문의 건축 경향을 잘 보여 준다. 별당과 같이 부재가 넉넉하고 치목 수준이 높으며, 상부 구조의 결구부에 사용한 너트와 볼트는 외래적인 건축 기술의 수용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