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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01
한자 馬山鳳岩洞水源池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지명/시설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12-1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권순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927년 5월 - 마산 봉암동 수원지 착공
이전 시기/일시 1930년 6월 6일연표보기 - 마산 봉암동 수원지 준공
개축|증축 시기/일시 1953년 12월 - 마산 봉암동 수원지 확장
훼철|철거 시기/일시 1984년 12월 31일연표보기 - 마산 봉암동 수원지 폐쇄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9월 14일연표보기 - 마산 봉암동 수원지 등록 문화재 제199호 지정
현 소재지 마산 봉암동 수원지 - 경상남도 창원시 봉암동 산 12-1[봉암동 88]지도보기
성격 상수원 저수지
양식 철근 콘크리트
소유자 창원시청
관리자 창원시청 건설과
문화재 지정 번호 등록 문화재 제199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있는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저수지.

[개설]

1899년 마산항의 개항 및 러일 전쟁과 한일 합방 이후로 일본인들은 마산의 주도적 세력으로 부상하고 근대화된 도시를 건설하게 된다. 밀집된 도시에서 쾌적하고 편리한 시설을 위해서는 상하수도의 건립이 무엇보다 절실하므로, 1927년 5월에 일본인들은 총공사비 45만 1173엔[円]을 들여 상수도 시설을 하게 되는데 이 상수원이 현재의 봉암 수원지이다. 이 때 계획 급수 인구는 1인 1일 170ℓ로 1만 6000명으로 설계되었고 1일 최대 급수량 2,720㎥/1일, 급수 방식은 자연 유하식이다. 저수지의 용량은 약 40만㎥이다. 저수지는 1928년 11월 마산에서 거주한 일본인 혼다 쓰치코로오[本田槌五郞]가 청구 착공하여 1930년 6월 6일에 준공하였다.

[위치]

마산 봉암동 수원지는 구 창원 지역에서 마산 지역으로 가는 봉양로에서 봉암북 14길로 우회전하고 기아 자동차 무학 대리점에서 우회전한 곳에 있다.

[변천]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과 일제 부역자들에게 상수도를 공급하기 위해 1927년에 착공하여 1930년에 준공되었으며 이후 마산의 인구 증가로 1953년 12월에 제방을 증축하여 저수 용량을 60만 톤으로 증대시켰다. 급속한 인구 증가로 인해 용수가 부족해지자 더욱 안정적으로 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광역 상수도 확장 사업을 벌이게 되고, 1984년 12월 31일에 준공하여 마산 봉암동 수원지는 폐쇄되기에 이른다. 수원지는 팔룡산의 남쪽으로 흐르는 계곡의 중앙 부분을 막아 건설하였는데 이 계곡은 유역 면적이 좁아 용수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일인들이 거주하는 신마산과 이격되어 있다. 2005년에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 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마산 봉암동 수원지의 제방은 현재 돌로 마감되어 내부 구조는 알 수 없으나 배수관을 설치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 구조로 혹은 철근 콘크리트와 모래와 흙으로 쌓은 복합형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 평면 형태는 계곡의 상류 쪽으로 돌출한 아치형 구조이며 상단의 길이는 약 73m이다. 우안에 여수로가 있는데 3개의 아치가 연속해서 결합한 구조이다.

바닥은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였으며, 여수로에서 제방으로 물이 넘어 올 수 없게 차단벽을 설치하였다. 제방 상단의 중앙에는 반원형의 취수탑을 설치하였는데 상중하 3단의 취수구를 설치하였다. 제방의 하단에는 배수구를 설치해 놓았다. 제방의 단면은 사다리꼴 형으로 추정되고 표면은 거칠게 가공한 사각형의 돌로 쌓아 마감하였다. 이 돌 틈 사이는 시멘트 모르타르로 충진하였다. 주변에 일식 관리사가 있었지만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현황]

현재는 수원지의 기능은 없고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마산 봉암동 수원지는 근대기의 상수도 관련 토목 유산으로 그 존재가 희귀하여 역사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