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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20
한자 昌原龜山城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산1-13
시대 고대/삼국 시대,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
집필자 김주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5년 1월 14일연표보기 - 창원 구산성지 경상남도 기념물 제7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창원 구산성지 경상남도 기념물 재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83년연표보기~1984년연표보기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창원 구산성지의 주변부 발굴조사
소재지 창원 구산성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산1-13 지도보기
성격 성 터
지정 면적 99,000㎡
소유자 해군 제8237부대
관리자 해군 교육 사령부 충무공 수련원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구산(龜山)에 있는 테뫼식 산성 터.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산1-13에 있는 구산의 8부 능선[116m] 부근에 산 정상을 중심으로 한 바퀴 둘러 축조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구산성에 대한 학술 조사는 구산 일대가 태릉 훈련원 진해 훈련 분원[진해 선수촌] 부지로 확정되어, 공사 중 성벽이 발견되어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 의해서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성의 둘레는 약 360m 정도이며 생토층면을 1m 가량 파내어 기단부를 만든 후 상단부는 지면에 거의 수직이 되도록 안팎으로 협축(夾築)하였다.

성벽은 내벽의 경우 높이가 5m가 되는 곳도 있으며 화강암 또는 점판암을 장방형으로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동쪽에 문터가 하나 있으며, 문 밖으로는 출입의 편리와 통제를 위한 호(濠)가 둘러져 있다. 성 안에는 상·하수도와 건물터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체성 아래에는 인수구(引水口)와 퇴수구(退水口)가 구비되어 성내의 식수는 상수로(上水路)를 통하여 높은 계곡의 물을 이용하였고 하수로(下水路)를 통하여 성 밖으로 내보내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동문지의 문루는 정면 1칸, 측면 1칸 정도의 규모로 추정되며 문지 주위에서 발견된 석조유구는 이 성곽과 관련된 건물의 온돌 시설일 가능성이 있다. 성의 폭은 기단부가 6m, 상부가 5.5m로 내외벽이 적심부를 향해 비스듬히 경사각을 이루며 축조되어 있다.

이곳에서 토기편, 기와편, 철기편, 석기편 등 유물이 다소 출토되었으며 삼각형의 기단보축, 세정방형 석재의 바른층쌓기 수법 등으로 보아 성곽의 축조 시기는 6세기 중후반쯤이고, 고려 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어 오고 있다.

최근 창원 구산성지 아래쪽에서 구산성 축조와 관련된 가야 시대 채석장과 고상 건물지와 우물 등이 동아세아 문화재 연구원에서 발굴조사되었다. 채석장에서는 가공한 석재는 사람이 직접 짊어지고 운반하였을 것으로 보이며 경사도가 높은 곳은 도르래 등의 기구를 이용했을 것이다. 구산성에 사용된 석재는 화강암과 안산암, 현무암, 퇴적암 등 다양한 암석을 가공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 확인된 채석장은 화강암만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아 구산성 주변에 또 다른 채석장이 있었을 것이다. 화강암은 다른 암석보다 경도가 높기 때문에 주로 성문주변 등의 중요시설에 사용되었으며 이는 구산성 축조시 성의 시설에 따른 암석의 종류를 달리하며 적절하게 선택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채석장 아래쪽에서는 고상 건물지와 우물이 확인되어 성벽축조 당시 동원된 부역인들이 거주한 생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고상건물은 여러 개의 군집양상을 보이는데 채석작업과 관련된 도구나 물품을 보관하는 창고와 실제로 부역인들의 생활공간과, 우두머리 공간 등으로 나뉘어진다. 건물의 크기로 보아 한 건물당 6~10여명 거주 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상 건물지 16동은 중복이 없는 것으로 보아 동시기에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취락 내 거주 인원을 산출해보면 최소 96명에서 최대 160명까지 수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상 건물 주변에서 불의 이용과 관련된 유구는 2기만 조사되었으며 건물 내무에서도 다른 흔적을 확인할 수 없어 취사는 개별 건물 단위가 아닌 공동식사 및 배급의 형태를 가졌을 것이다. 부역인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우물은 고상 건물지 중앙에 위치한다. 우물은 성벽축조를 위한 채석이 끝난 후 의도적으로 폐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1985년 1월 14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해군 교육 사령부 충무공 수련원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구산성은 테뫼식 산성으로 해안선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으나 마산, 창원, 김해 방면으로 통하는 주요 전략 지역으로서 해안 방어의 기능을 수행하는 군사적인 기능이 강한 산성이다. 따라서 6세기 대에 축조되어 고려 시대까지 사용된 구산성은 그 시대 해안에 위치한 산성 연구의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지금까지는 대체적으로 화순·강화·함안 지역에서 지석묘 축조를 위한 채석장, 그리고 함안 도항리 고분 축조에 따른 채석장, 760년(신라 경덕왕 19)에 가설된 춘양교[사적 제 457호]에서 채석장이 확인되었지만 성벽 축조에 따른 채석장이 확인된 것은 매우 드문 경우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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