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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27
한자 鎭海薺浦水中木柵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김주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7년 6월연표보기 - 진해 제포 수중 목책 동아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진해 제포 수중 목책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지도보기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의 제덕만 일대에 수군의 군선을 보호하기 위해 16세기경 설치된 관방 유적.

[개설]

진해 제포 수중 목책은 제덕만 일대의 매립 공사 중 토사의 무게로 개펄이 밀려나면서 박혀 있던 목책이 솟아오르면서 존재가 확인되어 동아 대학교 박물관이 1997년 6월부터 6개월 동안 발굴 조사한 관방 유적이다. 수중 목책과 관련된 기사는 1510년에 해당하는 『중종 실록』 5년 5월 24일 기록에 등장한다. 기록에 따르면 도원수 류순정이 장계를 올려 삼포왜란제포·영등포·안골포·부산포·다대포의 병선들을 왜적이 불태워 버려 남은 것이 없으므로 좌·우도의 각 포에 수중 목책을 설치할 것을 건의하여 시행하였다. 기록에는 “큰 나무를 박아 세우고 쇠사슬로 차례차례 연결하여 배를 감춘 포구를 횡단하고, 또 칡 동아줄로 무거운 돌을 나무에 달아 그 나무를 물 밑 한 자쯤 잠기게 하여 적선이 걸리어서 넘어 들어오지도 못하고 찍어서 끊지도 못하게 하고, 또 연결한 나무 중앙에 쇠갈고리를 설치하여 잠그기도 하고 풀기도 하여, 열고 닫는 것이 우리에게 있게 하여, 우리가 배를 쓰고자 하면 갈고리를 풀고 나가게 하면, 거의 배를 지키는 계책이 합당하다.”고 하였다.

진해 제포 수중 목책도 이 때 설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사 당시 지금의 해안선에 근접한 위치에서 발견되었지만, 설치하던 당시에는 매립되기 이전의 바다였다. 즉, 당시 해안선은 지금보다 100m 이상 동쪽으로 떨어진 곳에 위치하였으므로 목책은 바다 가운데 위치하였을 것이다.

목책 발굴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은 300여 점의 분청사기·토기·선박 부재·청동 제품·목간·와편을 비롯하여 사슴뿔 등 동물 유체 등이며, 인근 창원시 진해구 웅동두동 도요지에서 지표 채집된 유물과 동일한 기법의 기명도 채집된다.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20×30×15㎝ 정도의 할석과 칡넝쿨과 싸리로 만든 동아줄은 모두 실록의 기사와 부합하고 있다.

[위치]

진해 제포 수중 목책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 해안에 위치한다.

[형태]

진해 제포 수중 목책은 지금의 제덕 마을 부근, 즉 제포진성 앞에서 동서로 제포만을 가로지르며 설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조사된 말목은 가운데 부분은 지름 20㎝ 내외의 소나무를 사용하였으나 남북 지점의 말단부는 지름 10㎝ 내외의 참나무를 사용하였다. 나무 기둥은 150㎝ 정도의 길이와 10~20㎝ 내외의 직경을 가진 것으로서 크게 네 개의 군(群)을 이루면서 일렬로 분포되어 있었다.

[현황]

진해 제포 수중 목책은 현재 매립되어 있는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진해 제포 수중 목책삼포왜란 직후 왜의 선박 출입을 통제하고 우리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1510년 5월 이후에 설치된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제포진성의 육지 성곽을 보조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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