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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사직단 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47
한자 鎭海社稷壇址
분야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민간 신앙 유적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서중동 산8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현 소재지 진해 사직단 터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서중동 산 82 지도보기
성격 사묘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서중동에 있는 국토의 신과 오곡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사직단의 터.

[개설]

사직(社稷)은 사와 직의 합성어로, 직은 고대 이래로 재배되던 오곡 중에서 그 대표자로 인식되어 제사의 대상이 되었다. 『태종 실록』에 따르면 1406년(태종 6) 6월 예조의 건의를 받아들여 개성 유후사 이하 각도 각 고을에 사직단을 세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사직단은 조선 초기에 부·주·군·현에 설치되었으나, 당시 김해부의 임내이던 웅천에도 사직단이 설치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세종 실록』의 1430년(세종 12) 12월 갑술조에 의하면 이 해에 전국에 단유(壇壝)의 체제가 일정하지 않고 담장이 없는 곳도 있어서 이를 정비하였다고 한다.

[위치]

진해 사직단 터는 주을제 남측 고방산에 있다. 천자봉에서 남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과 이어지는 야트막한 야산의 정상부[74.8m]의 평탄면에 유적이 위치하고 있다. 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천자봉-시루봉-봉동산에 의해 에워싸여 있으며, 남쪽은 진해만과 접해 있다.

진해 사직단 터의 북쪽으로는 서중 소류지가 연접해 있고, 동쪽에는 웅천 읍성을 비롯한 웅천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남쪽으로는 국도 2호선이 관통한다. 유적이 위치한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으로는 계단식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다. 진해 사직단 터 주변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85호인 웅천 빙고지를 비롯하여, 웅천 읍성, 남문동 입석, 진해 여제단 터 등 많은 수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형태]

진해 사직단 터는 평면 형태가 원형이며, 평탄한 상태이다. 지표 조사 당시에는 사직단 터와 관련한 유물이나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의례]

사직제는 정기적인 제사와 부정기적인 제사로 구분된다. 정기적인 제사는 중춘·중추·납일에 시행하고 부정기적인 제사는 기우나 기청 또는 치병을 위한 기고제가 있고 책봉·관혼·출병 같은 국가의 큰일이 있을 때 시행하는 고유제가 있다.

[현황]

진해 사직단 터는 임야로 이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 사직의 제사는 종묘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국가의 제사였다. 종묘는 왕통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중시되었다. 이에 비해 사직은 농민 생활의 안정을 추구했던 치자(治者)들의 의식이 의례화된 것이다. 즉 백성이 국가의 근간이고 농업이 안정되어야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는 농본의 중요성을 강조한 당대인의 관념을 드러낸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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