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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장천동 태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50
한자 鎭海將川洞胎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 175-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1999년연표보기
소재지 진해 장천동 태봉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 175-1 지도보기
성격 태봉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에 있는 조선 시대 추정 태봉 터.

[개설]

태봉은 왕실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 중에서 그 태의 주인이 왕으로 즉위하면 태실을 봉하는 제도를 말한다. 태는 태어난 아기의 생명선이며 근원이 된다고 하여 소중하게 다루어졌는데 신분이 귀한 사람이나 계급일수록 죽은 시신과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조선 왕실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그 태를 소중하게 취급해 전국에서 길지(吉地)를 골라 태실을 만들어 안태하였다. 처음 태실을 정해 태를 봉안할 때는 태실의 장식이 호화롭지 않으나, 왕이 즉위하는 해 태봉으로 봉해지면 태실 내부와 외부의 장식이 달라진다.

진해 장천동 태봉주원장 또는 이성계의 태실이라는 속설이 전해지는 곳이나 증명된 사실은 아니며, 지표 조사 결과에서도 외형상 태봉지로 추정할 만한 증거를 찾지는 못하였다.

[위치]

천자봉에서 남서쪽을 뻗어 내린 사면과 이어지는 해발 60.3m 정도의 소구릉 정상부에 위치한다. 유적의 동쪽으로는 국도 2호선이 개설되어 있고, 서쪽에는 진해만이 입지하고 있다. 유적의 정상부는 후대의 삭평으로 인하여 지형이 완만한 평탄면에 해당하며 경작지로 이용되고 있고, 일부는 현대의 묘지가 조성되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0년대 후반 정부 차원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발간하여 문화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호, 관리하고자 하는 연차적인 사업이 추진되었다. 이에 장천동 태봉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1998년~1999년에 수행한 진해시[2010년 7월 1일 창원시로 통합됨에 따라 진해구로 변경됨] 지표 조사 보고서에 기술되었다.

[현황]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외형상 태봉지로 추정할 만한 석물들의 물적 증거를 찾을 수 없었으며, 정상부의 북쪽 사면에 조영되어 있는 후대 묘역에 단장되어 있는 장대석 등의 석재가 있을 뿐이다.

[의의와 평가]

속설에 주원장 또는 이성계의 태실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고증된 바는 없다. 다만 조선 후기에 제작된 고지도에 태봉을 강조하여 붉게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최소한 그때까지 태봉의 존재는 인식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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