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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 세스뻬데스 신부 상륙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64
한자 鎭海-神父上陸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양화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연표보기~1999년연표보기
소재지 진해 세스뻬데스신부 상륙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지도보기
성격 종교 유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있는 조선 후기 천주교 포교지.

[개설]

진해 세스뻬데스 신부 상륙지는 일본 규슈[九州] 지방에서 전교 활동을 하던 세스뻬데스 신부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요청에 의해 군종 신부로 조선으로 오면서 상륙하였던 곳이다.

[변천]

세스뻬데스 신부는 1577년 일본에 입국해 규슈의 히젠 지역에서 신자이며 무장이던 아리마의 성하에 머물면서 전교하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조선 출병의 선봉이었던 무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쿠로다는 천주교도들로 편성된 군대를 이끌고 한반도에 상륙하였다. 그러나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와 쿠로다의 군대는 명군과 의병에 쫓겨 웅천 왜성에 머물게 된다. 이때 고니시는 영신 생활을 지도하고 군율을 바로잡기 위해 일본 주재 예수회 부관구장 고메스 신부에게 군종 신부를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고메스는 규슈에 있던 세스뻬데스 신부와 일본인 전교 회장을 조선으로 보냈다. 세스뻬데스 신부는 1593년 12월 28일 웅천 왜성에 도착하여 선교 사업에 힘썼으며, 1595년 봄 일본으로 돌아갔다. 세스뻬데스 신부는 한때 천주교인이었던 대마도주 소[宗]씨가에 머물렀다가 규수의 코쿠라로 건너갔지만, 박해에 시달리다 1611년 6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사도 마을의 남쪽에 위치한다. 북쪽으로는 천자봉[502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사면과 이어지는 구릉이 에워싸고 있고, 남동쪽으로는 용출만과 접해 있다. 유적 남쪽에는 남산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90년대 후반 정부 차원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발간하여 문화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호·관리하고자 하는 연차적인 사업이 추진되었다. 진해 세스뻬데스 신부 상륙지는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1998~1999년에 수행한 진해시[2010년 7월 1일 창원시로 통합됨에 따라 진해구로 변경됨] 지표 조사 보고서에 실려 있다.

[현황]

진해 세스뻬데스 신부 상륙지 유적은 진해 남문 경제 자유 구역, 와성 경제 자유 구역과 관련한 조성 사업으로 인하여 원 지형의 훼손이 심하여 현재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1993년 9월 풍호 공원에 최초로 한국을 방문한 스페인 예수회 그레고리오 세스뻬데스 신부의 방한 400주년을 기념하여 세스뻬데스 신부의 아버지 고향인 스페인또레도의 비야누에바 데 알까르데떼(Villanueva de Alcardete) 시민들이 진해 시민들에게 헌정한 세스뻬데스 신부의 기념 조형물이 세워졌다. 높이 2.5m, 무게 600㎏ 청동으로 제작된 조형물은 선교 활동을 상징하는 십자가를 중심으로 세스뻬데스 신부의 이름 약자인 G와 C가 양옆에 새겨져 있고 윗 부분은 태극기로 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한국에 최초로 천주교를 전한 스페인 출신 신부와 관련된 유적이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김** 풍호공원에는 해당 조형물이 없습니다!
  • 답변
  • 디지털창원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조형물은 풍호공원에 있던것을 2006년, 세스뻬데스 신부가 당시 도착했던 진해 사도마을로 옮겼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이용 부탁드립니다.
201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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