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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296
한자 馬山多求里諸沫將軍墓
이칭/별칭 제말 장군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산66-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송성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3월 11일연표보기 - 마산 다구리 제말 장군묘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26호 지정
현 소재지 마산 다구리 제말장군묘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산 66-5 지도보기
성격
관련 인물 제말(諸沫)
봉분 크기/묘역 면적 710㎝[봉분 세로]|670㎝[봉문 가로]|992㎡[묘역 면적]
소유자 칠원 제씨 문중
관리자 칠원 제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26호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에 있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 제말(諸沫)의 묘소.

[개설]

제말은 1567년(명종 22)에 경상남도 고성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자(字)는 성여(成汝), 호(號)는 가계(柯溪)이다. 제말은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김해(金海)·의령(宜寧)·정암(鼎巖)·문경(聞慶)·현풍(玄風) 등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이러한 공로로 1593년(선조 26)에 성주 목사(星州牧使)에 명되었으나, 성주성(星州城)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이에 나라에서는 제말 및 그와 함께 의병 활동을 한 조카 제홍록(諸弘綠)[1558~1597]을 위해 ‘쌍충 사적비(雙忠事蹟碑)’가 내려졌다. 현재 비와 비각은 진주성에 세워져 있고, 제말에 대한 향사는 성주 충절사(忠節祠)와 고성의 운곡 서원(雲谷書院)에서 받들어지고 있다. 또한 칠원 제씨 문중에서 다구리 제말 장군묘 아래에 경충제(景忠齊)를 세워 향사하고 있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다구리의 옥녀봉(玉女峰) 남단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묘에서 남쪽으로는 다구벌과 죽도를 지나 진동만을 한 눈에 볼 수 있어 조망이 탁월하다.

[형태]

마산 다구리 제말 장군묘의 묘역은 992㎡ 남짓한 규모로, 봉분과 비갈, 상석과 망주석 1쌍이 있다. 원래 문인석도 있었는데 30여 년 전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봉분의 형태는 세로가 약간 긴 원형으로 세로 710㎝, 가로 670㎝이다. 봉분 앞쪽으로는 큰 돌을 이용하여 길이 8.58m의 계절(階節)[무덤 앞에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땅]을 설치하였다.

무덤의 전면 중앙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는데, 상석의 크기는 105×76×24.5㎝이고, 받침의 높이는 29㎝이며, 향로석의 크기는 29.5×25×40㎝이다. 무덤의 전면 동쪽에는 비갈을 세워 놓았고, 크기는 127×62.5×29㎝로서 재질은 사암이다. 묘 양쪽에는 망주석이 서 있는데, 동쪽 망주석의 높이는 162㎝, 서쪽 망주석의 높이는 160㎝이다. 또 묘 앞쪽으로는 10년 전에 세운 양(羊)의 형상으로 보이는 석물 2기가 있다.

[금석문]

묘비 전면에는 ‘유명 조선국 충장 제말 선무공신 증 자헌대부 병조판서 지의금부사 행 성주 목사 시공지묘(有明朝鮮國忠壯諸沫宣武功臣贈資憲大夫兵曹判書知義禁府事行星州牧使諡公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측면에는 ‘만력 이십사 정유 십이월 일립(萬曆貳十四丁酉十二月日立)’이라 새겨져 있어 1597년(선조 30)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현황]

제말의 묘역은 1597년(선조 30)에 만들어진 것이다. 마산 다구리 제말 장군묘는 1996년 3월 11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26호로 지정되었으며, 칠원 제씨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마산 다구리 제말 장군묘는 조선 중기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서 활약한 의병장의 무덤으로서, 조선 중기 분묘 양태를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