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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383
한자 鎭海自隱洞水田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83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임동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 진해 자은동 수전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8년 12월 - 진해 자은동 수전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 시작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 1월 - 진해 자은동 수전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시굴 조사 종료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9년연표보기 - 진해 자은동 수전지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굴 조사
현 소재지 진해 자은동 수전지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830-2 지도보기
성격 수전지 유적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에 있는 조선 시대 후기의 수전지 유적.

[개설]

진해 자은동 수전지대한 주택 공사 경남 지사에서 공동 주택을 건립하기 위해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유적이다. 1998년 봄 창원 대학교 박물관의 진해시 일원에 대한 문화 유적 정밀 지표 조사 과정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1998년 12월부터 1999년 1월까지 실시된 시굴 조사에서 약 1,800㎡ 규모의 고대 수전층이 넓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4개월 간 조사 기간을 연장하여 긴급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조선 시대 후기에 해당하는 수전지와 저수지, 수로 등이 확인되었으며, 이들 유구에서는 가공된 목재와 백자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위치]

진해 자은동 수전지는 행정 구역상 창원시 진해구 자은동 830-2 일대에 위치한다. 자은동 수전지웅산[693.8m]의 정상에서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의 말단부에 해당하며 이 일대에 상당량의 지하수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 아파트 공사 과정에서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형태]

진해 자은동 수전지에서 조사된 유구는 수전지와 저수지이다. 수전지에서는 논둑과 논둑을 보강하는 말뚝 열, 수로와 수로를 보강하는 말뚝 열과 보강석, 집수구와 배수구, 경작 흔적 및 사람과 소의 족적 등이 확인되었다. 논둑과 수로, 경작 흔적 및 사람과 소의 족적은 수전지의 전체적인 배치 방향인 북서-남동 방향을 따르고 있어 자연 환경이 농경의 중요 조건임을 보여주며, 이곳에서 소를 이용하여 경작하였고, 따비보다는 주로 쟁기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관개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저수지는 벼농사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시설이다. 자은동 수전지에서도 장기간 물이 고여 있던 흔적을 보이는 진흙층이 확인되었으나 파괴가 심하고 저수지나 산에서 물을 공급하는 수로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진흙층의 층위로 보아 여기에서 확인된 저수지는 직경 1~2m 정도이고, 퇴적이 진행되어 당시의 수심은 확인하기 어려우나 진흙층이 5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되어 조선 시대 기록에 나타난 제언의 크기와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수전지의 경작 시기는 출토 유물을 통해 추정할 수 있는데 조사 지역 주변에서는 삼국 시대의 굽다리접시, 통일 신라 시대의 도장무늬 토기, 고려 시대의 청자, 조선 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 등이 함께 섞여 출토되었다. 이는 이 지역이 삼국 시대 이후부터 인간의 활동 무대였음을 보여주지만 이 연대가 바로 수전지의 연대로 연결될 수는 없다. 이곳에서 출토되는 백자는 빙열(氷裂)[도자기 유약에 얼음 모양의 가느다란 균열이 가 있는 것]이 있지만 그릇의 두께가 비교적 얇고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였으며, 굽이 낮은 점 등 조선 후기 백자의 특징을 잘 보여주므로 이를 감안하면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반에 사용된 수전지로 볼 수 있다.

[현황]

진해 자은동 수전지는 현재 택지 조성 후 아파트 등 건물들이 들어서 도시화된 상태로서 유적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며, 유적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보호 시설은 마련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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