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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6479
한자 合浦城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73-4|73-18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12월 20일연표보기 - 합포성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합포성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합포성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 73-4|합성동 73-18지도보기
성격 읍성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합성동에 있는 고려 시대의 평지성.

[개설]

합포성지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기 위하여 배극렴이 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포성지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는 현상 변경이 이루어진 곳을 중심으로 동아 대학교 박물관과 경남 발전 연구원이 3차례에 걸쳐 실시했다. 현재 합포성지의 성벽과 내부는 급격한 도시화로 대부분이 훼손되어 그 원형을 파악하기 힘들다.

[건립 경위]

합포성지는 고려 말인 1360년(우왕 4) 왜구의 침범을 막기 위하여 문하시중 배극렴이 부하 장졸과 인근 주민을 동원하여 축성한 성이다. 당시 성의 높이는 15척[약 4.5m], 폭 6척 7촌[약 2m], 둘레가 4,291척[약 1,300m]이었다. 성곽에는 2척[약 0.6m] 간격으로 성가퀴가 있고 창검과 기치를 세우고 파수병이 주야로 감시하여 그 위용을 과시했으므로 적이 감히 넘보지 못한다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의 성으로서 경상우도 방어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위치]

합포성지는 마산 시가지에서 북동쪽으로 치우친 지점인 마산 합성동에 위치하며, 동쪽에서 산호천이 남북으로 흘러 마산만에 유입된다. 바다와 상당히 떨어진 곳에 축성한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말 왜구의 극심한 침탈이 지속되었으므로 바다 인접 지역에 성곽을 축조하기에는 힘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마산만 일원에는 고려 초에 축조되어 합포성 축조 이전까지 회원현의 치소로 사용된 회원 현성이 성곽의 기능을 수행했으므로 굳이 바다와 인접한 곳에 또 다른 성곽을 축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합포성지 주변에는 서쪽으로 이산성지회원 현성, 남쪽으로 마산 왜성, 동쪽으로는 창원 읍성, 북쪽으로는 이산성지가 위치하고 있으나, 주변 성곽들이 합포성지와 동시기에 사용되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다.

[형태]

합포성지의 평면 형태는 서쪽 중앙이 돌출된 오각형에 가깝다.

[현황]

합포성지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성벽의 대부분은 훼손되고 북벽 약 100m 정도만 남아 있으며, 내부는 도시 계획에 의해 도로, 철도가 사방으로 관통하고 그 사이에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밀집해 있다. 합포성지에 대한 발굴 조사는 북문지와 북벽에 대해서 동아 대학교 박물관과 경남 발전 연구원이 3차례 실시했다. 조사 결과 성벽과 치 및 내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성벽은 계단식으로 축조하였으며, 기저부는 표토층을 걷어내고 생토면에 율석을 한번 깔아 평평하게 다진 뒤 그 위에 납작한 장대석 1단을 지대석으로 두었다. 대형의 할석을 지대석에서 약간 들여서 세워쌓기와 눕혀쌓기 방식으로 쌓았고, 상단부로 올라갈수록 소형의 할석을 사용했다. 성벽 축조에 사용한 석재는 주변 야산에서 운반해 온 것으로 마산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점판암계 할석들이다. 외벽의 바깥에는 단면 ‘U’자 형자의 해자가 있었다고 한다. 내벽은 외벽에서 약 8.8~9.8m 떨어진 지점에 축조하였는데, 외벽과는 달리 할석으로 막돌쌓기를 하였다가 폭 7.2~8m 정도로 줄여쌓기를 하였고, 다시 외벽 끝에서 내벽 쪽으로 약 4~5m 사이에서 수직으로 내벽을 축조하여 성벽의 단면이 계단 형태를 이루도록 하였다.

성벽의 부속 시설로는 치가 확인되었는데, 성의 각 모서리에 4개소, 북벽에 3개소, 남벽에 3개소, 동벽과 서벽에 각각 1개소 등 총 12개소로 추정된다. 이 중 조사된 치성은 2개이며 1개는 이미 복원되었다. 치 사이의 간격은 115m이며, 복원된 치성은 너비 7m, 길이 7.2m이다. 한편 2006년 시굴 조사에서 확인된 치성은 너비 8m, 길이 6.3m 이상이다. 치성은 성벽에 덧대어 축조되었으며, 치의 하단 주변에는 판석재의 보도를 설치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치의 최대 높이는 대략 1m 정도이다.

북벽의 내벽에서 확인된 건물지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목조 건물지로 내벽 폭을 줄여 그 속에 배치하였다. 건물지의 일부는 훼손되었으나 바닥에는 무문 벽돌을 한 벌 깔고 좌우 측면과 뒷면에 토담을 쌓았으며, 전면에 초석을 나란히 배치하였다. 전면에는 벽이 아니면 홍살문과 같은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앙 벽면 가까이에는 막돌이 나란히 놓여 있다. 토단의 기초석인지 내부에 따로 세운 나무 기둥의 초석인지 확실하지 않다. 초석의 크기나 주변 담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성내에 설치된 사당과 같은 것으로 추측된다.

합포성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주로 기와류와 자기 및 마름쇠이다. 집선문·화문·격자문 타날 기와들이 출토되었고, 분청사기는 내면 바닥에 인화문이 시문된 것으로 15세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합포성지는 1976년 12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합포성지는 고려 말부터 조선 전기에 이르기까지 마산과 창원 지역의 치소성으로 행정 기능 뿐 아니라 경상우도의 절도사가 주재하던 병영의 역할을 수행한 성이다. 합포성은 경상도 해안 내륙의 군사 거점이자 왜구 방비의 최일선 방어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유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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