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206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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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山山湖洞龍馬城址 |
이칭/별칭 | 용마산성,창원성,마산왜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산53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안성현 |
건립 시기/일시 | 1592년 - 용마성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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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597년 - 용마성 개축 |
현 소재지 | 마산 산호동 용마성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산532-1 |
성격 | 왜성 |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에 있는 조선 시대의 왜성 터.
[개설]
마산 산호동 용마성지는 용마산성·창원성·마산왜성으로도 불리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왜성이라는 이유로 해제되었다. 일본측 사서에서는 이 성을 창원성으로 기록했으며, 성 외곽에 함선이 직접 닿았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그와 같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위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산호동 산532-1인 마산만의 북서쪽에 인접한 용마산[84.5m]과 서쪽 구릉을 두르고 있다. 마산만과 인접한 교통의 요지이며, 마산만에서 산호천을 따라 육지로 이어지는 수로를 통제하기에 유리한 곳이다. 용마성지 주변의 관방 유적으로 북쪽에 이산산성, 서쪽에 회원현성이 있다.
[변천]
용마성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침략해 온 왜군이 용마산에 자신들의 군사 기지로 쌓은 성이었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가 1597년 정유재란이 발발하자 창원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와 그의 아들 가츠시게[勝茂] 부자가 재차 점령하여 축성을 완료하였다고 한다.
[형태]
용마성지는 용마산과 서쪽 구릉 정상부를 두른 제곽식이며, 평면 형태는 장타원형에 가깝다.
[현황]
용마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조선을 침략한 일본군들이 경상남도 해안 지대에 쌓은 30여 개의 왜성 중 하나이다. 현재는 대부분 무너지고, 일부 석축만이 남아 있다. 정상부는 정비 후 공원화되었으며, 호국 영령을 기리는 충혼탑이 있다.
[의의와 평가]
왜성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 남해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서울에서 평양에 이르는 지역에 일분군이 축조한 성을 지칭한다. 현재까지 남해안 연안에서 확인된 왜성은 30여 개 정도이다. 왜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째, 임진왜란 시 국내에 깊숙이 진출한 일본군의 수송로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축성된 것으로 부산에서 한성을 거쳐 평양에 이르는 길에 축조되었다. 둘째, 남해 연안에 축성한 것으로 일본으로부터의 보급로 확보와 동시에 일본군의 후퇴 이후 형세의 유리한 전개를 위하여 축조되었다.
용마성지는 후자에 해당하며, 바다와 인접하여 주위를 조망하기 좋은 곳에 축조되었다. 이와 유사한 입지의 왜성은 부산왜성·안골포왜성·웅천왜성·가덕왜성·송진포왜성·사천왜성·순천왜성 등이다. 용마성지는 각 곡륜이 인접하면서 계단상으로 되어 있는 제곽식으로 전형적인 왜성 구조이다. 따라서 용마성지를 비롯한 주변의 왜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 임진왜란 당시 왜성의 특징과 더불어 왜군의 전략과 전술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