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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봉선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40
한자 崔鳳仙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4년 8월 10일연표보기 - 최봉선 출생
출생지 최봉선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최봉선(崔鳳仙)[1904~1996]은 1919년 3월 21일 마산 의신 학교(義信學校) 재학 중 김남준, 이수학, 안음전 등과 함께 결사단을 조직하여 독립 만세 운동을 계획하였다. 독립 만세 운동에 필요한 태극기와 격문 등을 자신의 집에서 제작하였다. 그는 3월 21일, 의신 학교, 창신 학교(昌信學校) 학생들과 구마산(舊馬山)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1927년 3월,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에 거주하던 경상남도 평의회 의원 김기정이 평의회 석상에서 “조선인에 대한 교육은 필요하지 않으며 조선어로 통역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매국적 발언을 하자 이에 분개하여 시민대회에 참가하고 시민 공동 절교에 동참하였다. “김기정은 일체의 공직을 파직하라”는 시민의 요구를 묵살하고 도리어 시민을 고소하였다. 이때 통영 경찰서에 구속되었으나, 석방 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다시 시민 대회를 개최하여 경찰서로 몰려가 구속자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김기정의 집으로 가서 고소 취하를 요구하였으나 반성의 기미가 없음을 알고 3월 15일 격문을 만들어 수천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김기정의 집을 습격하다가 체포되고 말았다. 1928년 12월 13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소위 소요로 징역 1년 8개월의 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2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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