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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07056
한자 金此炯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24년 7월 28일연표보기 - 김차형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43년 - 김차형 항일 결사 일심회 조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77년 - 김차형 대통령 표창 수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0년 - 김차형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김차형 출생지 - 경상남도 창원시
성격 독립 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창원시에서 활동한 독립 운동가

[활동 사항]

김차형(金此炯)[1924~?]은 1943년 경상남도 진해의 일본군 제51 해군 항공창(第51海軍航空廠)에서 군속(軍屬)으로 근무하던 중 한국인에 대한 차별대우에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 민족차별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던 김차형김병길(金秉吉), 최연종(崔演鍾) 등 11명과 함께 항일결사 ‘일심회(一心會)’를 조직하였다. 일심회 회원들은 창원군 상남면(上南面) 성주사(聖住寺) 등지에서 밀회(密會)를 갖고 독립운동을 계획하였다.

일심회는 한국의 독립 촉진 운동(獨立促進運動)과 한국인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및 항일 투쟁 의식 고취에 전력을 다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연합군이 진해에 상륙할 때 무장 봉기하여 항공창을 점거하고 항공기와 변전소를 폭파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러나 1944년 1월 11일 헌병 보조원 국본모(國本某)의 밀고로 거사를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체포되고 말았다. 1944년 7월 12일 진해 해군 고등 군법 회의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받고 부산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해방을 맞아 출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였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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