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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진공의 효행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079
한자 毅鎭恭-孝行談
이칭/별칭 여양리 옥산재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여양리 옥산재」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관련 지명 옥산재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 여양리 옥방 마을 지도보기
성격 구비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의진공|부모님
모티프 유형 효행담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옥방 마을에 전해오는 밀양 박씨 의진공의 효행이야기.

[채록/수집 상황]

『감동으로 적신 효성』[마산 문화원, 1998]에 「여양리 옥산재」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진전면 여양리 옥방 마을 옥계천 계곡에는 옥산재(玉山齋)라는 재실이 있다. 이 재각은 밀양 박씨 의진공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960년에 세운 것이다. 옥산재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선생은 천성이 지극히도 효성스러워 어려서부터 능히 부모님께 승순하였고, 점차 자라서는 집이 가난하여 부모님을 봉양할 수 없게 되자 밭갈이와 글 읽기와 고기잡이와 나무하기를 동생이 했던 것과 같이 하였다.

1815년 을해년에 홍수가 동이로 들어붓듯이 퍼부어 노도가 골짝을 메우며 천지가 개벽하는 것보다 심하였는데, 공중으로부터 공의 이름을 부르며 말하기를 “너의 부모를 어느 곳으로 모셔라.” 하였다. 그제야 공이 부인 조씨와 함께 부모님을 등에 업고 나가니 밤이 칠흑같이 어두워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웠는데 문득 번갯불이 땅을 밝혀 앞길을 비춰주어 부모님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었으며 촌락은 함몰되었던 것이다.

홍수가 지나간 뒤 문호(門戶)를 복원하였으며 어머님의 병환 시에는 하늘을 향하여 자신이 어머님의 병환을 대신하겠다고 빌기도 하였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뒤에는 여묘에서 상제를 마쳤으니 이것이 어찌 천고에 처음 보는 효도가 아니며, 위에서 말한 하늘이 감응하고 귀신이 돌아보며 보호하여 준다는 것과 부합됨이 아니겠는가.

공이 죽은 뒤 아들 곤계가 유생들의 서장으로서 조정에 계문하여 고종 임오년(1882년)에 비로소 정려각을 지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의진공의 효행담」 이야기는 의진공이 어려서부터 효심이 남달랐는데, 을해년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 때 하늘의 계시가 있어 부모님을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킬 수 있었으며,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여묘에서 상제를 마치기도 했다는 의진공의 ‘효행담’이 주 모티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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