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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중과 성중 형제의 효행」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084
한자 盧正中-晟中兄弟-孝行
이칭/별칭 삼계리 쌍효각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8년 - 「삼계리 쌍효각」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수록
관련 지명 쌍효각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108-1번지 지도보기
성격 구비 설화|효행담
주요 등장 인물 노정중, 노성중 형제
모티프 유형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 공양의 효행 모티프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108-1번지에 세워져 있는 삼계리 쌍효각에 기록된 교하 노씨 노정중과 성중 형제의 효행담.

[채록/수집 상황]

1998년 마산 문화원에서 간행한 『감동으로 적신 효성』에 「삼계리 쌍효각」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리 마을 입구 원풍대 옆에 교하 노씨 정중(正中)과 성중(晟中) 형제의 효행을 기리는 쌍효각(雙孝閣)이 있다. 이들 형제는 어려서 모친을 여의었으나 예를 다해 복상하고 홀로 남은 부친에게는 정성을 다해 봉양하니 부친의 마음이 한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부친이 마침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었으니 아들은 몇 해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병상을 지켜 간호하였지만 끝내 타계하고 말았다. 이후 형제는 삼년을 하루같이 눈비를 무릅쓰고 부친의 묘소를 지켰으니 사람들이 모두 이들 형제의 효행에 감동하였고 마침내 나라에서 정려를 내려 이곳에 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은 「효자 증 중학교 관모려암 노공 형제 정려기(孝子贈中學敎官慕廬庵盧公兄弟旌閭記)」 내용 중 일부이다.

형제는 차례로 태어났는데 나면서부터 문득 부모 사랑하는 도리를 알아서 엉금엉금 걸어 다닐 때도 먹을 게 있으면 반드시 부모의 입에 먼저 드리고 점차 자라서는 스승에게 취학하매 혼정신성(昏定晨省)의 절차를 폐하지 않으며, 빨리 닦는 데에도 반드시 친히 점검하여 게을리 않고 응답하기를 부드럽고 순히 여겨 어김이 없으므로 그 지능의 현저함이 일찍부터 이와 같았다. 모부인의 상사를 당하여 어린 나이에 애통하여 거의 생명을 잃을 뻔 했으며 삼년상을 마치도록 채소와 과실을 먹지 않고 또 요아(蓼芽)의 시를 벽 위에 써서 걸고 날마다 세 번씩 읽으며 눈물을 흘렸으니 지극한 정성이 아니고서 이같이 하겠는가. 그 선고를 섬김에도 동동촉촉하여 한걸음에도 미치지 못하였는데 선고께서 우연히 중풍이 발작되어 무릇 기거운동과 음식하고 대소변에 사람을 기대지 않고는 능치 못하매 공의 형제가 주야로 곁에 모시어 십년을 하루같이 하며 음식이 나오면 이는 “무슨 반찬이며 무슨 국입니다.” 하고 밖에 소문이 있으면 “어느 곳에서는 이런 일이 있으며 아무 사람은 이런 경동이 있었다.” 하고 혹으로는 어린 아이는 재롱을 지어 노래자(老萊子)의 새끼 재롱 하듯 하고 일찍이 개와 말까지도 꾸짖지 않음은 공명(孔明)이 배우는 바와 같이하고 속옷에 더러운 것을 친히 빨고 닦기를 만석꾼의 집에 중량과 같이 하니 이러한 일이 다 사람으로 어려운 바라고 하였다. 상고를 당해서는 공의 나이가 이미 애훼하지 못할 때가 되었는데 슬퍼하여 어린이의 울음소리는 차마 들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노정중과 성중 형제의 효행」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효행이 남달랐던 형제가 부친이 중풍으로 바깥출입이 불가능하자 십년을 하루같이 주야로 보살피며 지극정성으로 섬기는 ‘효성’을 주요 모티프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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