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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 장군 주원장과 이성계의 인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175
한자 乞人將軍朱元章-李成桂-因緣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8년 - 「걸인 장군 주원장과 이성계의 인연」 『진해 스토리』에 수록
관련 지명 천자봉 -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장천동 지도보기
성격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주원장|아버지|어머니|이성계|걸인 청년들
모티프 유형 인연담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주원장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었다.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학문에는 애착을 가져 병학(兵學)의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영양실조로 병을 얻어 뜻을 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남긴 유산은 가난과 책뿐이었다. 주원장의 어머니는 집도 없는 처지라 지금의 천자봉 아래에 오두막을 지어 걸식을 하며 아들에게 글공부를 시켰고 주원장은 어머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공부를 하고 궁술과 검술을 익히며 장수의 기개를 스스로 익혔다.

아버지의 한을 풀어 줄 듯 무럭무럭 자라는 아들에게 흡족하여 늙음을 잊고 살았던 어머니도 어느덧 걸식이 힘에 부치게 되자 이제 주원장이 어머니를 부양하여야 했다. 달리 생업이 없는 주원장 역시 걸식을 할 수 밖에 없었으나 의리에 밝아 얻어먹기만 하지 않고 대신 산에서 나무를 해서 밥과 바꾸었다. 주원장이 산에서 나무를 하면 나무하는 친구가 생겼고 걸식을 하게 되면 이번에는 비렁뱅이 친구가 생겼다. 그런 또래에서도 유달리 글공부를 하고 무술도 닦은 원장은 자연히 이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친구들을 모아 전쟁놀이를 하며 산타기, 수영, 궁술, 검술 등 무술을 익히게 하고 장부의 기개를 불어 넣어 훈련을 시키니 그를 보는 사람들은 걸인 장군이라고 불렀다.

천하에 태어나 남다르게 성장하던 주원장은 드디어 큰 포부를 가지고 원나라를 정복할 장도에 올랐다. 나무꾼과 걸인 청년들로 전투 부대를 편성하고 누더기 중국옷으로 위장을 하여 연경(燕京)에 이르기 전 천진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때마침 그때 이성계도 원나라를 정복하려고 연경으로 가다 공교롭게 주원장과 자연히 대면하게 되었고, 끼니도 같이 하게 되었다. 주원장은 먹는 양이 많아서 한 말의 밥을 거뜬히 먹어 치우는 대식가였다. 그러나 이성계는 그 절반 밖에 먹지 못하였다. 주원장은 그런 이성계를 보고 “그 정도의 먹성이라면 원나라 같은 대국을 넘겨다보지 말고 고려나 지배할 꿈을 꾸는 것이 좋겠네.” 라고 하자 그 말을 들은 이성계는 그 길로 원나라 정복을 단념하고 주원장과 의형제를 맺고 고려로 발길을 돌렸다.

이성계의 막료들이 돌아오면서 주원장 보다 이성계가 먹성이 적어서 원나라 정복을 양보하였다고 하면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 “우리는 반 말을 한 말이라고 하여 이성계 장군도 한 말을 먹었다고 하자.” 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때부터 중부 지방에서는 다섯 되를 한 말이라고 하는 풍습이 생겼고, 이것을 구별하기 위해 ‘대두 한 말, 소두 한 말’이란 말이 생긴 것이라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걸인 장군 주원장과 이성계의 인연」 이야기는 제목처럼 주원장이성계의 만남과 의형제 맺기라는 ‘인연담’이 주요 모티프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원장이 갖가지 병학을 익혀 나무꾼들과 걸인들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중국 원나라를 정복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성계주원장이 원나라 정복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중국 연경에서 조우하게 되고 의형제를 맺게 된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끼니를 같이 하게 되는데 이성계주원장의 절반 밖에 먹지 못한 것을 보고 그 정도 먹성으로 원나라를 넘보기에는 무리라고 하자. 이성계는 이내 정복을 단념하고 주원장과 의형제를 맺고 고려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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