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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의병 우유일의 무덤」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11182
한자 少年義兵-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정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8년 - 「소년 의병 우유일의 무덤」 『진해 스토리』에 수록
성격 인물 전설
주요 등장 인물 우유일
모티프 유형 피란|의병

[정의]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에 전승되는 전설.

[채록/수집 상황]

『진해 스토리』[진해시, 2008]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우유일은 일곱 살에 『효경』을 통달할 정도로 아주 총명하였으며 부모를 공경할 줄 알았다. 우유일이 아홉 살 되던 해에 왜군의 침입으로 부모를 따라 함안군 여항산 중의 주지동으로 피란을 하였다. 피란지에서 식량이 부족하여 산나물을 캐고, 열매를 따 부모를 섬기면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피란생활을 하는 동안 나이 열다섯 살이 되었고, 남달리 지모가 뛰어나고 힘이 세었다.

그때 왜군은 피란지까지 침입하였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병을 일으켜 두려움 없이 왜군과 싸웠으며 그의 용맹함은 왜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이런 용맹무쌍한 그의 활약과 전술에 왜군이 감히 덤비지를 못하여 주지동 사람들은 난 중에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왜란이 끝난 뒤에도 얼마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서른두 살 때 부모를 모시고 고향인 명동 삼포 마을로 돌아왔다.

왜군이 머물렀던 웅천 고을의 민심은 어지러워 자못 옛 미풍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는 이를 매우 개탄하고 고향의 문우들과 의논하여 먼저 문묘부터 보수하고, 춘추 석전을 올리며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그곳의 소년들을 명륜당에 모아 강을 해서 성적에 따라 상도 주었다. 그러면서 자신도 또한 나이를 잊고 소년들과 같이 밤낮으로 학문을 닦았으며 그런 가운데에서도 사람 사귐이 원만하여 화친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그도 예순 여섯의 일기로 세상을 뜨니 고을에서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함안에서 부음을 받고 달려온 주민들은 우유일의 용맹으로 왜적의 피해 없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보은으로 유해를 함안으로 모시겠다고 하였고, 유족들이 승낙하여 함안군 칠서면에 유택이 마련되었다.

[모티프 분석]

「소년 의병 우유일의 무덤」 이야기는 임진왜란으로 인한 피란 생활과 의병 활동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는 인물 전설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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