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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별미 떡전어 이야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A020201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귀산동 석교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정헌

가을철의 별미 전어를 두고 흔히 창원 지역에서는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거나, “집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면 되돌아온다.” 혹은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 잠그고 전어 먹는다.”는 말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가을철 전어는 별미 중의 별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전어 중에 붉은색을 띠고 있고 그 맛이 일품인 전어를 흔히 ‘떡전어’라 부르는데 이 떡전어를 두고서 흔히 사람들은 모양이 떡처럼 퍼져 있고 맛이 떡같이 고소하다 하여 ‘떡전어’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 유래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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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철 별미 떡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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횟감으로 손질된 떡전어

조선시대 이 생원이라는 사람이 양반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고기 잡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내이포(內而浦)에 정착하여 어민들과 몸을 부대끼며 살고 있었다. 내이포는 예부터 고기잡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던 곳으로 백성들이 모두 순박하였다. 이 생원은 이곳에서 불우한 이웃 노인들과 아이들을 제 몸같이 아껴 줌으로써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신망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어느 해 이 생원이 가을 전어잡이를 나서는 배에 처음으로 올랐는데 유난히 더웠던지 해수온도가 올라 그물에 끌려오는 전어들이 많지가 않았다. 그래도 한 마리의 고기라도 더 낚을 욕심에 수없이 그물을 던지고 걷어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이때 갑자기 이 생원이 가위로 그물을 잘라 버렸다. 시원찮은 전어 잡이에 화가 나 있던 어민들은 생원에게 그 연유를 따져 물었다.

그러자 이 생원은 “서해 바다에 ‘젖개’라는 조그만 섬마을이 있는데 그곳은 바다 산삼이라 불리는 해삼이 많기로 유명해서 큰 파도가 치면 해삼들이 바다 위로 둥둥 떠다닐 정도였지. 그런데 지금은 해삼을 잡기는커녕 구경하기도 어렵게 되었다네. 그건 바로 그 사람들이 돈에 눈이 멀어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해삼의 씨를 말려 버렸기 때문이지. 올해 전어잡이가 신통치 않다고 해서 분별없이 그물로 끌어올린 새끼전어들을 장시에 내다 판다면 올 겨울 그럭저럭 식솔들의 배를 채울 수는 있으나 내년에는 젖개마을 꼴이 되지 않겠나?”

이 생원의 말에 어민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새끼전어들을 다시 물속으로 돌려보내 주었고, 이후로는 전어들의 산란기인 5월에서 7월까지는 전어잡이를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이 생원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존경과 신망이 더 깊어졌다. 그러나 이런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무리들도 생겼는데,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한 수령 김익재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어느 해 관찰사가 이 마을에 도착하자 수령은 그를 대접하기 위해 전어를 잡아오라고 백성들에게 명하였다. 그런데 마침 이때는 이 생원과 약속한 금어기라 백성들은 할 수 없이 이 생원의 허락 없이는 전어를 잡아 올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수령은 노발대발하였다. 이 사실을 관찰사에게 알리면서, 이 생원이 사람들을 수시로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여 역모를 꾀한다는 모함까지 덧붙여 말했다.

관찰사는 즉시 이 생원을 포구로 잡아오게 하고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으고는 다음과 같이 호령하였다. “이 생원! 내 이 마을의 전어가 하도 맛이 있다기에 수령에게 부탁하여 그 맛을 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런데 어찌 마을 어민들이 지아비같이 여겨야 할 수령의 말을 듣지 않는단 말인가? 게다가 자네가 마을 사람들을 집에 수시로 불러 들여 음모를 꾸민다는데 사실인가?”

이에 이 생원은 목에 힘을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 집 찾아온 이웃들이 털어 놓은 어려움에 몇 마디 말로써 도움을 주고자 했던 일이 이 나라 법에 어긋난 것이라면 나를 벌하여 주시오! 그리고 관찰사에게 전어를 대접하는 일이 가을 전어 풍년을 위해 산란기에는 전어를 잡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면 나를 죽여 주시오!”

이 말을 들은 관찰사는 일견 수긍을 하면서도, “내가 이 곳 전어 맛을 꼭 보고 싶으니 마을 어민들에게 말하여 전어를 잡아 오면 너를 풀어 주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이 생원은 크게 웃으며 “마을 사람들이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어찌 전어를 잡아 오라고 명하겠소. 정 전어를 맛보고 싶다면 직접 잡아 드시오.” 하고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이 말에 관찰사는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어 망나니를 불러 그의 목을 치고자 하였다. 망나니의 칼춤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이 생원을 목 놓아 불렀다. 그런데 망나니의 칼날이 이 생원을 향하는 그 때 바다 속에서 무엇인가 툭툭 튀어 올라 백사장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다름 아닌 전어들이었다. 전어들은 뭍에 올라오자마자 몸에 빨간 핏기를 띄며 죽어가기 시작했는데, 전어들이 모래 위에 놓인 모습이 마치 덕(德)이라는 글자 형태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관찰사는 이 생원을 풀어 주었고, 이 사실이 왕에게 알려지자 중종은 그를 정치자문 격인 홍문관부제학에 임명하였다. 그 후 이 생원을 죽음으로부터 구한 내이포의 전어를 사람들은 ‘덕전어’라 부르게 되었다. 이 ‘덕전어’가 된소리로 발음되면서 ‘떡전어’로 불리게 되었던 것이다.

[정보제공자]

이종현(남, 1935년생, 귀산본동 거주)

황은준(남, 1933년생, 석교마을 거주)

이두봉(남, 1930년생, 석교마을 거주)

홍태식(남, 1955년생, 석교마을 거주)

박순자(여, 1961년생, 석교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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